"사람들이 그랬어요. 먼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다음엔 또 이름이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탄 다음에 여섯 정거장 더 가서, Elysian Fields, 낙원에 내리라고요!" 이는 블랑쉬가 무대에 등장해 내뱉은 첫마디이자 그의 모든 욕망과 삶을 농축한 한 마디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낙원에 살고 싶었던 블랑쉬는 더없이 잔인한 현실에 하차하게 된 것.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미국 대표적인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으로, <연극열전3> 시리즈 작품으로 문삼화 연출이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학로 극장에 올렸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명문가 출신 블랑쉬 뒤보아(배종옥 이승비)는 농장과 저택을 잃은 뒤 여동생 스텔라가 살고 있는 뉴올리언스의 '낙원'이라는 지역을 찾아간다. 그러나 현실에 적응한 스텔라와 스탠리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결코 '낙원'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뒤보아 집안의 '벨리브' 농장 소유권 문제를 두고 시작된 블랑쉬와 스탠리의 팽팽한 대립은 식을줄 모르고, 결국 스탠리가 블랑쉬의 문란한 과거를 폭로하며 극에 치닫는다.
◆ 4명 주인공의 각기 다른 욕망
우선 블랑쉬를 살펴보자. 블랑쉬는 '하얀 색'을, 뒤보아는 '숲'을 의미한다. 즉 하얀 숲이라는 뜻. 그 이름에 걸맞게 블랑쉬는 극 전반에 이어 흰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블랑쉬는 동생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몰래 술을 '훔쳐' 마시고 극 중 여러 차례 목욕을 하며 이 때문에 스탠리와 모순이 격화되기도 한다. 그는 또 밝은 빛을 싫어한다. 전구에 갓을 씌우고 어두운 밤에만 데이트를 즐긴다. 이는 그가 자신의 문란하고 아픈 과거를 잊고 외면하고 예쁘고 화려하게 포장하고자 하는 심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밖에 그의 대사도 인상적이다. 첫 등장에서 내뱉은 대사뿐만 아니라 "난 진실을 말하지 않아요. 진실이어야 하는 걸 말하죠"나 마지막 낯선 정신과 의사의 팔짱을 끼고 온순한 양같이 끌려가면서 던진 한마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는 항상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아왔어요"는 많은 사색을 자아낸다.
스텔라는 어떤 인물인가? 얼핏 보면 그는 언니를 지극히 이해하고 불안과 공포에 젖어 사는 언니를 보살피고자 하는 착한 동생, 언니와 남편의 모순을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남편에 순응한다. 임신한 자신에 폭력을 휘두른 남편이라할지라도 하룻밤 잠자리로 모든 게 용서가 된다. 그는 가문을 지키기보다는 폴란드 출신 이주노동자인 스탠리를 따라 객지에서 타향살이하고 있다. 또한 남편 스탠리의 결정에 따라 언니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것을 묵인한다.
스탠리는 거칠고 과격하며 폭력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에 충실하다. 술김에 아내를 구타하지만 아내가 집 나가자 울면서 전화해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그는 '폴란드 잡종'이라는 블랑쉬의 질타에 "폴란드 사람은 그냥 폴란드 사람이지 폴란드 잡종 아니야. 난 미국에서 태어난 백 퍼센트 미국인이야"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하지만 블랑쉬의 문란한 과거가 드러나고 아내가 출산 때문에 병원에 간 틈을 타 블랑쉬를 겁탈한다. 그 이름이 내뿜는 '다듬어 지지 않은 돌'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살린 인물이라겠다.
마지막으로 미치. 미치는 극 중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그 또한 다른 각도에서 다른 모습의 욕망을 드러낸 인물이다. 순수하고 어머니께 효도하는 순정파 청년 같은 미치, 블랑쉬를 정숙한 여인으로 결혼까지 약속했던 미치는 블랑쉬의 과거를 알게 되자 "여름 내내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는 거야"라며 블랑쉬를 폭행한다.
◆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연극
극 중 블랑쉬를 맡은 배종옥과 이승비, 스텔라 역의 이지하, 스탠리 역의 이석준 등 이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특히 더블 캐스팅인 배종옥의 블랑쉬는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의 블랑쉬라면 낮은 톤으로 조곤조곤 말하는 이승비의 블랑쉬는 가녀리고 연민을 이끌어내는 블랑쉬다.
◆ 욕망에 대한 사색, 욕망의 충돌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악인도 선인도 없다. 다만 각 인물의 서로 다른 욕망을 서로 다른 각도와 모습으로 비춰냈을 뿐이다.
일찍 문삼화 연출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커지는 것이 탐욕이며 아무리 풍족해도 욕망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욕망이 아닌 다른 생각과 환경 속에 처해있는 각자의 욕망이 충돌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은 온전할 수 없다. 온전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우리의 욕망도 끝이 없다는 건가? 오늘도 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탔는가? 우리의 종착역은 과연 '낙원'일까?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오는 5월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