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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주택시장 장기침체 늪으로 좌초되나…①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상치 않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1주 사이에 가격 하락폭이 4000~5000만원까지 이르러 주택시장 불황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19억원 하던 성남 42평형 아파트가 13억원 아래로 떨어지고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이 14주 째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와 세금 부담으로(미분양 양도소득세 감세혜택 종료) 가격 상승 기대감이 줄면서 중대형 아파트 인기가 시들해지며 가격 하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 동작·동대문·금천·강북구와 과천, 인천 동·남구 등에선 중소형(60~85㎡·18~25평형) 아파트의 3.3㎡(평)당 매매가가 중대형(85㎡ 초과)을 넘어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잇따른 공급물량 과잉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부 재정비촉진지구(이하 뉴타운 지구)와 재개발·재건축 지구의 실제 매매가격이 일반분양가보다 낮아 주택시장 침체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대형 평수의 아파트 인기가 떨어졌지만 새로이 공급되는 물량이 주로 중대형으로 이뤄진 것도 가격하락을 한 몫 거들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시장의 관심을 끌었던 뉴타운 지구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노른자위로 불리며 각광을 받았던 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등 알짜배기 뉴타운의 지분가는 올 들어 4개월째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

아울러 재개발·재건축 공급물량의 일부 분양권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주택시장 침체의 불안요소로 꼽히고 있다.

부천 뉴타운지구의 김학도 위원장은 “서울 서대문·은평, 인천 청라, 용인 성복·신봉, 경기 파주에선 재개발 아파트 분양권 가격이 폭락했다”라며 “한때 프리미엄이 붙었던 일부 아파트에선 ‘마이너스 2억 원’의 역(逆)프리미엄이 붙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이 장기 조정 양상을 보이자 일부에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최근의 시장 침체가 “단기적 하락일 뿐 폭락은 아니다”라며 “공급물량을 정책적으로 조절하면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부동산 시장을 긴급 진단해보고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원인과 대응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 집값 폭락에 거래량은 뚝…주택시장 장기침체 가시화

서울 재건축 사업의 상징인 서울 강남 대치동의 은마아파트. 지난 3월 정밀 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10년 간 기다려온 재건축 추진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지만 거래는 한산하다.

이곳의 현재 시세는 102㎡(31평)형이 9억∼10억3000만원, 112㎡(34평)는 11억∼12억3000만 원선이다. 연초에 비해 7000만∼8000만 원 가량 떨어진 값이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인근의 공인중개사 대표는 “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사실상 거래가 없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매매가가 떨어지고 있어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거래량은 증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수요가 늘어나게 마련인데 막상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재건축 전문변호사인 법무법인 영진의 강정민 변호사는 “단기간에 이 정도로 집값이 내리면 매수세가 붙는 게 이제까지의 시장 패턴이었다”며 “일반적으로 아파트 매매가가 떨어지면 수요가 몰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변호사는 “하지만 집값이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공급이 풀린 상황이라 실질적인 가격 매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이는 주택시장이 침체를 넘어 빙하기에 돌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주택경기 침체가 단순히 과도한 공급물량에 의한 가격하락양상을 넘어 거래감소까지 동반돼 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례로 기대를 모았던 서울 잠실 주공5단지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12㎡(34평), 115㎡(35평), 119㎡(36평) 시세는 각각 10억5000만, 12억2000만, 12억7000만 원 선이다.

13억~15억 원을 오르내리던 3개월 전에 비하면 2억~3억 원씩 매매가가 대폭 내려갔다. 하지만 가격이 폭락해도 실수요자는 거의 없어 가격 하락폭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시장상황이 양호할 때 집값이 하락하면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조절이 일어나게 된다”며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매매가의 폭락과 거래량 감소가 연쇄적으로 일어나 주택시장의 장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재개발·재건축사업이 공급주도…중대형 평수가 원인

시장에서는 과잉 주택공급과 악성 미분양의 원흉을 각종 개발 사업의 분양시점이 경기침체와 맞물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뉴타운지구, 재개발·재건축 지구 등 분양을 앞두고 있는 일선 현장들에서 지분가격이 떨어지며 매매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수도권 지역은 이미 주택공급률이 100%에 육박한 상황”이라며 “실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공급과잉이 악성 미분양사태의 원인이고 분양시점이 일시적으로 몰리며 이런 현상을 가속화 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까지만 해도 3.3㎡당 3050만원을 기록했던 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 제9구역의 지분가격은 지난 3월 3027만원으로 하락한 데 이어 지난 4월엔 3022만원으로 떨어졌다.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3구역 66∼99㎡(20~30평)의 시세도 마찬가지다. 이 면적대의 3.3㎡당 지분가격은 지난 1월 2896만원에서 2월 2883만원, 3월 2859만원, 4월 2853만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현재 분양을 앞두고 있는 이들 지역이 주로 중대형 평수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다. 고분양가, 유지·관리의 어려움 등에 따라 중대형 평수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공급되는 물량에 소형평수가 부족하다보니 거래감소를 부추기고 있다.

한남뉴타운의 조합관계자는 “길게는 10년이 걸리는 개발 사업에 있어 소형평수를 늘리는 설계변경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라며 “당초 사업을 시작할 때는 중대형 평수의 수요가 급증했으나 막상 사업이 끝난 뒤 중대형 평수에 대한 실수요가 사라진 것이 집값 하락과 거래감소의 주범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수급 불균형이 악성 미분양의 주된 원인이라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민간부동산연구소가 지난 달 작성한 ‘국내 부동산시장 중장기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주택을 필요로 하는 주 수요층 인구(35~54세)는 서울 2010년, 인천 2011년, 경기는 2018년에 정점에 달하며 서울·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에선 2017년 정점(870만 명)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는 전국의 평균 주택의 주 수요층 인구가 정점에 달하는 시기는 2011년으로 인구 변화에 따른 수급 불균형이 현재에 이르러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내년 이후로 주택시장이 장기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매수심리 위축, 또 다른 변수

최근 수도권 보금자리주택까지 미분양 사태가 번지며 수요자들의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과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임에 따라 주택가격 하락을 압박하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다.

정부가 올해 초 DTI규제 강도를 높인지 얼마돼지 않아 수도권 경매시장이 얼어붙으며 주택경기 침체를 예고한 바 있다. 대체로 경매시장은 경기와 반대되는 경향이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 경매시장은 활성화되고 경기가 좋아지면 경매시장이 침체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제 변수와 부동산 정책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DTI규제와 같은 정책이 지속됐을 경우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 경매전문가는 “이런 침체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주택경기시장의 조속한 회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전했다.

또 지난 3월 DTI, LTV규제 강화의 후속조치로 미분양 양도소득세에 대한 감면혜택이 종료되면서 매수심리 약화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별로 보면 강남 부동산 경매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법원경매로 유입되는 물건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가격부담이 큰 강남권을 중심으로 낙찰가 총액은 올 들어 계속 감소 추세다.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시장에 감정가보다 싼 매물이 쌓인 탓에 DTI규제 확대 대상에서 제외된 다세대주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경매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DTI규제 확대가 계속 이어짐에 따라 주택경기시장이 얼어붙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분양가를 한참 밑도는 매물이 속출함에 따라 분양시장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 해 10월 시범지구 사전예약 때만 해도 인기를 끌었던 보금자리주택 지구에서도 미분양사태가 벌어질 정도다.

◆ 일각 “장기침체는 성급한 판단”…안정적 하락기일 뿐

한편 일각에선 집값버블 붕괴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관계자는 “집값 거품이 급속히 붕괴돼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는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택시장은 안정적인 하락기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4년간 주택가격이 물가보다 17%포인트 낮은 상승률에 그쳤고 연간소득 대비 주택가격 수준도 외국에 비해 높지 않다”라며 안정적 하락기에 대한 근거를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최근의 조정 국면이 부동산 폭락으로 이어져 주택시장이 침체의 늪으로 좌초할 것이라는 예견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대형 평형을 중심으로 가격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울의 중소형을 중심으로 가격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폭락이란 표현을 쓸 수는 없다”며 “하지만 하향 조정 국면에 돌입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이유로 가격 폭락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주택 가격이 전적으로 인구 변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대출 규제로 조정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내성이 충분히 생겼다는 것이 안정적 하락기라는 의견의 근거다.

정부의 입장도 이와 유사하다. 정정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최근 “건설업계가 요구한 주택대출규제 완화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이어서 완화는 어렵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보금자리주택 공급시기 조정이나 민간택지 비중 확대 건의에 대해서도 “기존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또 수도권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요구 역시 “수도권은 주택보급률이 95% 수준이고 재개발 이주 수요 증가로 미분양이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지방 미분양 해소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며 불가입장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