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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동의서 하자 치유를 위한 국토부 지침 ‘무효’

이른바 '백지동의서'를 통해 조합을 설립했더라도 추후 동의서를 다시 걷으면 된다는 국토해양부의 행정지침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법원 판결로 인해 법리를 제대로 따지지 못한 정부의 지침으로 조합원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설립 무효 소송이 줄을 이으며 백지동의서 관련 소송으로 파악된 현장이 100여 곳이 넘는 상황을 고려해 국토부가 구제를 위한 행정지침을 내렸으나 법원에서 이를 무효라고 선언한 것.

국토부 지침에 의해 백지동의서 관련 소송에 한 시름 놓고 있던 수많은 조합입장에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서울 도봉구 쌍문1 재개발 구역에서 나왔다. 3년 전 주민동의율 81%로 조합을 설립해 재개발에 착수한 이 구역은 현재 90% 이상 철거가 끝난 상태로서 조합설립무효소송에 휘말리며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고 있던 곳이다.

일부 조합원들이 당시 동의서거 사업비 항목을 빼놓은 백지동의서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자 조합은 지난달 동의서를 새로 걷어 구청으로부터 '조합변경인가'까지 받아놓은 상태다.

국토부가 지난 3월 '백지동의서를 통해 조합을 설립했더라도, 다시 동의서를 받아 조합변경인가를 받으면 하자를 치유할 수 있다'는 지침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냈기 때문에 이 구제지침에 따라 조합변경인가를 획득해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정 반대로 흘러갔다. 조합원 김모 씨가 도봉구청과 조합을 상대로 낸 조합설립무효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행정6부)은 국토부 지침에 따른 하자 치유에도 불구하고 '조합설립은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무효인 조합설립 이후 새 동의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하자의 치유나 보완이 아니라 새로운 동의로 봐야 하기 때문에 조합설립인가를 소급해 유효로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국토부의 행정지침 자체가 처음부터 무효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당 구청은 국토부의 하자 치유 지침대로 따랐을 뿐이라며 항소했지만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당초 백지동의서가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구제지침에 따라 주민들이 보완 동의를 했고 이로 인해 조합설립변경인가까지 내준 상황에서 법원의 판결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앞으로 조합설립무효소송을 둘러싼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인데 이에 따른 피해는 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지도 의문이다”고 전했다.

국토부 또한 “법원의 판결이 재판부 마다 엇갈리고 있어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자신들의 보완책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어 문제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선현장에서는 백지동의서로 인한 재개발 지역 소송은 102건에 달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국토부의 사후 대책조차 효과가 없다고 밝혀지면 ‘재개발 소송 대란’은 피하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