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기업의 현금성자산이 늘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들의 올해 1분기말 기준 현금성 자산은 총 67조8917억원(1개 기업 평균 1212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2조5716억원 증가해 3.94%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기형 현대증권 연구원은 “현금성자산 증가는 전반적으로 기업의 수입은 괜찮았는데 설비투자와 같은 지출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며 “위기 상황에서 경상비 지출과 기획, 투자 등을 줄이면서 나갈 돈이 안 나가고 자산형태로 보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기업들은 안전자산으로 현금성자산을 확대하고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렸다. 투자효과의 불확실성과 불안심리가 더해지면서 돈을 손에 쥐고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는 내수침체와 고용시장침체를 가속화시켰다. 정부는 내수와 고용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와 대출확대, 규제완화 등 ‘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투자확대를 독려했지만, 기업은 죽는 소리만 하고 꿈쩍하지 않았다.
2008년 말 기업의 곳간에는 무려 69조1301억원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당시 기업의 현금성자산은 전년말 대비 6조1308억원이 늘어난 규모였고, 전년 대비 10% 가량을 늘린 것이었다. 더욱이 5대 그룹 외 기업은 3.38%만 증가한 반면, 5대 그룹의 현금성자산은 전년동기 대비 18.94%나 증가했다. 상위 10개사가 전체 기업의 현금성자산 보유금액의 41.32%를 차지했고, 현금성자산을 가장 크게 늘린 증가율 상위 기업도 LG(76.05%), SK(43.84%), 현대자동차(19.77%), POSCO(18.10%) 순이었다.
2009년 1분기에는 더욱 늘어 총 78조1254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5조9664억원이 증가해 8.27% 증가율을 보였다. 경기불안이 이어지면서 자금확보를 위해 차입금 증가와 투자 축소가 역시 원인이었다. 증가율 상위 기업도 POSCO(61.35%), LG(20.11%), SK(8.45%), 현대자동차(3.73%) 순으로, 전분기 때 증가율 상위 기업이 순위 변동만 있는 채 그대로 이름을 올렸다.
2009년 6월 말에는 총 74조3514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4조9415억원, 7.12% 증가했고, 3분기에도 총 78조8009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9조3934억원, 13.53% 증가했다. 특히 10대 그룹의 현금성자산이 전년말 대비 11.36%나 증가했다. 2009년 말에도 총 84조7320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13조7940억원(19.45%) 늘었고, 10대 그룹의 현금성자산은 전년동기 대비 19.04%나 증가했다.
반면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8년 말 24.1% 감소했고, 이 수치는 1998년 11월에 27.3% 감소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2009년 1월에도 전년대비 25.3% 감소, 상반기 계속 감소폭이 컸다. 6월 들어 감소폭을 줄여 5.6% 감소했고, 9월 들어서야 5.8% 증가하면서 12개월 만에 증가를 보였다.
그동안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는 갖가지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내놨지만, 결국 기업의 투자는 세계 경기 회복세를 보고 뒤따라 나왔다. 그나마도 설비투자 증가율은 현금성자산 증가율과 매출 증가율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치였다.
김 연구원은 “올 1분기 매크로 분석에 따르면 기업은 투자를 늘렸지만 수익이 그보다 훨씬 컸다”며 “작년 기업의 수익이 회복세였고 환율 경쟁력도 작용해 매출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작년 중반부터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기업들은 몸 사리기를 끝내고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연구원은 “현금성 자산 상승률이 수익 증가에 비해서는 적기 때문에, 투자를 확대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