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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낙수효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한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 논란이었다.

일부에서는 부자와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정책이라며 비난했고, 일부는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 이 대통령의 747공약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며 비호했다. 이때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말 중 하나가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落水效果)’다. 이 용어는 대기업과 부자들이 호황을 맞으면 이들의 투자와 소비 활동이 증가해 자연히 중소기업과 서민들도 혜택을 받는다는 경제이론이다. 이 이론의 실효성에 대해 입씨름이 계속됐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부터 올 1분기까지 기업의 현금성자산과 설비투자 증감율을 보면 낙수효과 비관론에 힘이 실릴 듯하다.

결론적으로 낙수효과는 없었다. 모두 힘들었던 시기, 기업도 어려웠다면 이해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글로벌 경기침체를 이유로 신규고용, 투자는 고사하고 인력감축을 감행한 기업의 곳간에는 현금이 오히려 늘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정부가 투자를 독려하기위해 각종 규제완화와 세제혜택, 금리인하와 대출확대 등 진귀한 ‘진상품’을 받쳤지만 기업들은 이를 고스란히 현금으로 챙겨뒀다. 아래에선 내수와 고용시장 침체로 목이 타들어 가며 기업의 낙수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기업은 거짓 곡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런 매정한 기업에 여전히 국민들은 많은 양보와 기대를 하고 있다. 힘들게 벌어 낸 세금이 방만 경영으로 힘들어진 기업재건 공적자금으로 들어갈 때도, 소비신용경색을 풀어야 할 자금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일 때도, 재계총수가 면죄부를 받고 사면될 때도 분을 삭이고 또 기대를 건다.

OECD회원국 중 유일하게 연간 2000시간 넘게 일하면서 임금은 OECD 평균 60%밖에 못 받으면서도, 삼성의 사상최대실적 소식에 내 주머니가 두둑해 진 듯 기뻐하고, 뜬금없는 애국심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오랫동안 우리는 성장을 외쳐왔고 성장의 중심에 기업이 있었다. 대기업의 성장이 국가 성장을 견인했고, 그 덕에 국민이 먹고 살만해졌다고 큰 소리 친다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 성장의 중심에 국민이 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고, 세계 9위의 수출국이다. 삼성, 현대, 엘지, 현대기아자동차, 에스케이 등 글로벌 기업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고, 반도체, 조선, 자동차, 에너지, 건설 등 분야에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제 중심의 자리를 국민에게 내줄 때가 됐다. 국민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가 성장하고 국민의 삶의 질이 성장해야 한다.

설사 방대한 사회자본과 복지예산 증가로 국가경제규모나 대기업의 실적이 감소하더라도, 국가경제규모가 15위로 내려앉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삶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양보를 할 때가 됐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대신 ‘시티즌(citizen, 국민) 프렌들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