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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 하반기 주택정책 기조 해부

지난 비상경제대책회의가 끝난 후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가 선회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주택 시장이 최악의 거래 침체에 빠져든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실수요자의 거래 불편을 없애는 데 집중해 달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한 것을 놓고 규제 완화 카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오간 이 대통령의 발언은 거래 활성화를 꾀하기보다 일부 실수요자들의 거래 불편을 덜어줘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 작년 9월 이후 규제 강화 쪽으로 돌아섰던 정부의 주택 정책 기조 선회를 점치는 것과는 다르게 큰 폭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

이와 관련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 관계자는 “신규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지만 살던 집(입주자 급매물)이 팔리지 않아 고심 중인 이들과 같은 실수요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시장 안정기조가 유지돼야 한다는 데 회의 참석자들의 인식은 같았다”고 선을 그은 뒤 거래 활성화와 이에 따른 부동산 경기 부양은 정책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런 이유로 시장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언급한 ‘불편 해소’를 위한 카드는 4·23 대책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멈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입주자 급매물을 구입하는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의 경우 DTI를 초과해 융자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했던 4.23대책처럼 부분적인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기존 정부정책을 검토해보고 국토부 관계자 및 전문가들 의견을 토대로 하반기 주택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선회할 것인지에 대해 전망해봤다.

◆ 안정기조는 유지…거래활성화 도모

이번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기조는 계속 유지하면서 주택 거래는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목표는 다소 모순되는 경향이 있어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특별한 ‘카드’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정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4·23대책)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23 대책은 새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보유한 기존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 또는 1주택자에게 DTI를 초과해 대출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4.23대책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국민주택기금에서 최고 2억원까지 연 5.2%로 대출을 받거나,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보증해 주도록 했다.

그러나 △ 투기지역(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 있으면 안 되고 △ 6억원·전용면적 85㎡ 이하여야 하며 △ 주택기금 대출은 부부합산 소득이 연 400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되고 △ 입주예정자의 자격도 입주기간이 지나 분양대금을 연체하는 경우로 한정돼 있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다. 이런 탓에 17일 현재 국민주택기금 대출과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 보증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원 조건이 까다롭고 매수-매도자가 딱 맞아떨어지기 어려워 대책 시행 한 달이 넘도록 지원 실적이 전혀 없는 상태.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요건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일부 요건을 완화해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완화해 지원 대상을 늘리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 때문에 입주자 급매물의 가격과 면적 제한을 완화하고 분양대금을 연체하지 않는 경우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기조는 거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대출 관련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기보다는 거시 경제가 회복되면 거래 시장도 활성화될 것이라는데 기본 틀을 두고 있어 하반기 주택정책이 큰 폭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DTI 전면해제는 ‘글쎄’

“DTI를 완화하자는 것은 규제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여러 채를 살 수 있도록 해 주자는 얘기다” 국토부 이원재 주택정책관의 설명처럼 이번 비상대책회의에서는 DTI해제에 대해 모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정부와 주택 시장 전문가들은 대체로 DTI 폐지 등 주택 시장에서 휘발성이 높은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는 “DTI규제를 전면 완화하지 않는 것은 은행과 개인의 자산 건전성을 해칠 위험이 있어서다”라며 “DTI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결국 지금보다 빚 더 내서 집을 사라는 신호를 줄 수 있어 위험한 정책이고 서울은 DTI규제를 유지하고 수도권만 부분적으로 완화해 주는 방안 역시 은행과 개인의 재무 건전성이 위험해지기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DTI, LTV 등 금융 규제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취재에 응한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집값의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실수요자의 주택 거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DTI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제시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데 금융규제 없이 이것이 가능하겠냐”고 반문하며 “DTI, LTV 등 금융규제의 전면해제에는 부정적일 수 있겠지만 서울 및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의 부분완화는 있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 분양가상한제 완화는 ‘반반’

분양가 상한제 완화가 다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전문가들 의견이 ‘반반’으로 나뉜 상황이다. 그간 국토부가 민간택지에 짓는 민영아파트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할 것을 주장해 왔지만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을 이유로 관련 기관 간 입장차이로 분양가상한제 완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가 계류 중인 주택법 개정안 2건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로 한 만큼 분양가상한제 재추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가 업체의 창의적 주택 건설을 막아 거래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전면 폐지는 아니고 시장안정 기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와 건설업계가 줄기차게 제시해 왔던 분양가상한제를 부분폐지하는 것으로 의견이 조율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건설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 부분폐지로 가닥이 잡힌다면 강남 3개구 등 투기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에만 상한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지역은 단계적으로 풀어줘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폭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돼 특정 지역에서 비싼 아파트가 분양되고 그 결과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미분양 아파트와 기존 주택 매입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복합적 대처로 거래 활성화 도모

한편 금융규제 완화 없이 주택 거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은 뾰족이 없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DTI 규제를 유지하면서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단편적인 대안만으로는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건설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금융규제를 유지하면서 실거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은 없는 만큼,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시너지효과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 중 하나가 보금자리주택이 기존 주택 시장에 미치는 왜곡된 효과를 줄여야 한다는 방안이다. 업계에선 현재 보금자리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싸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기존 분양시장은 물론 주택거래 자체가 위축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동산뱅크 관계자는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지구에서 공급될 민영주택의 가격을 미리 공개해 주변 시세에 비해 엄청나게 싸지도 않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유예 대책을 연장하거나 아예 폐지해 실거래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고 올 하반기 매물을 대거 쏟아낼 경우 주택 가격이 급락하고 거래시장이 더 위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전문가는 “이 제도를 1년간 연장한다고 미리 공개를 하거나 안 되면 연장은 없다고 미리 확실하게 밝혀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며 “거래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닌 만큼 대증적 요법보다는 복합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정부가 시장에 급격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대책 보다는 부분적인 정책으로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일각에서 내년부터는 서울의 주택공급 물량이 줄어 주택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는 만큼 정부가 앞장서서 집값 상승을 부추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거래 침체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일시적으로 대처한다 하더라도 하반기 주택정책기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