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취재현장]금감원, 라 회장 조사로 존재의 이유 알려라

금융감독원이 12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금융실명제법 위반의혹과 관련해 조사에 나서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치권의 화살이 금감원에까지 날아들자 뒤늦게 등 떠밀려 수사에 나서는 모양새지만 금감원으로서는 존재의 이유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최근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에 밀려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라 회장 조사로 금융‘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명확히 존재의 이유를 내세울 수 있다. 금감원이 뒤늦게 수사에 나선 것에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 회장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사건인 박연차게이트 때부터였다. 당시 라 회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거금 50억원을 전달한 사실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돈의 성격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그러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영포라인’과 엮이면서 라 회장에 대한 의혹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감원도 정치적 실세의 비호를 받고 있는 라 회장을 봐준 것이 아니냐는 정치권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금감원으로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린 격이다.

그러나 금감원이 치중해야 하는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 금감원은 당시 라 회장의 50억원이라는 거금이 박 회장의 계좌에서 발견됐다는 점과 라 회장이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 금감원이 정치권에서 자유로워지고 금융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본연의 ‘감독’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최근 사건이 청와대, 정치권, 재계까지 확대되면서 이미 미심쩍은 부분들이 들춰지고 있다. 금감원의 뒤늦은 수사는 어찌 보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것처럼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글ㅣ증권금융부 김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