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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현대기아차의 이상야릇한 유령집회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앞. 이상한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올바른 질서 문화 정착을 알리는 현수막 앞에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교통질서 확립 피켓을 들고 줄을 지어 섰다. 이 회사가 벌이고 있는’ 올바른 교통 문화 정착’ 집회다.

현수막 뒤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까치발을 해서 들여다보니 그 뒤에는 작업복 위로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라고 써 있는 10여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중이었지만, 이 정장 입은 이들로 인해 불 수 없었다.

'동희오토'는 충남 서산에 본사를 둔 기아차의 하청업체로 모닝을 생산한다. 모닝은 6월, 수출을 포함해 총판매 100만대를 넘기며 기아차 전 차종 중 국내 판매 1위를 한 이 회사의 효자상품이다.

반면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의 노동자들은 불안 속에 살고 있다. 9백여 명의 노동자 전원이 동희오토가 다시 하청을 준 17개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 들은 계약직으로 간접고용 형태이기에 항상 불안하다.

농성 중인 한 노동자는 “밤에 갑자기 건물 청소를 한다며 소방호수를 끌어와 물을 뿌리지 않나, 자동차 배기구를 들이대어 매연을 뿜어내질 않나 그리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통해 잠을 못 자게 하고 있다”며 하소연 한다.

특히 야간집회가 허용되면서 기아차측은 회사 앞에 미리 집회신고를 냈다. 이른 바 유령집회 신고다. 그러니 같은 시간 불만이 많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집회는 불법일 수밖에 없어, 이를 조장한 기아차측의 의도에 이들 노동자들은 더 화가 난다.
이들 노동자들은 "한 달에 11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는데 잔업이 없는 날은 90만원 밖에 되질 않는다"고 말하면서 "업무강도도 세다. 너트를 죄는 임팩이라는 공구가 있는데, 하루 종일 쥐고 작업을 하면 손가락이 항상 굽어 있다. 파스냄새가 가실 날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군대를 막 갔다 온 젊은 신입들도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해서 나단다. 모닝이 1등을 하면 뭐 하나, 작업환경이 열악한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현재 동희오토의 부지와 건물은 현대차 소유이며 기계설비는 현대캐피탈에서 리스해서 운영하고 있다.
 
IMF이후 현대기아차는 경차가 수익이 안 된다며 경차생산을 외주로 돌렸다. 그곳이 동희오토. 하지만 설계 주문 생산지시, 판매, 모두가 현대기아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농성자들은 "우리는 기아차의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을 한다. 근데 현대기아차는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동희오토 사장은 힘이 없다"며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몽구 회장'뿐이라고.

하지만 지난 월요일에는 정 회장에게 동희오토 노동자의 사정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꾸도 안했다고 한다. 이들의 요구는 단지 기아차 직원으로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해 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한다.

기자는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현대기아차라는 '뱀파이어'에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가는 현대기아차 취재길이 왠지 씁쓸했다.

글ㅣ산업부 박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