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의 사내하청 근로자도 2년 이상 근무했다면 '근로자 파견'에 해당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노동계가 제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와 관련된 첫 대법원 판례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3부는 현대자동차에서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로 일하다 해고된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다만 A씨와 함께 소송을 제기한 B씨에 대해서는 "사내하청 근로자가 2년이 되기 전 해고돼 직접고용간주 규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지휘명령이 사내하청업체의 현장관리인을 통해 이뤄졌어도 사실상 현대차에 의해 통제됐던 점 등에 비춰볼 때 A씨는 직접 현대차의 노무지휘를 받는 파견근로자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자동차조립 등 제조업의 생산공정업무가 법이 정한 근로자파견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년 이상 근무한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본 원심 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A씨는 2002년 현대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해 근무하다 노조활동 등을 이유로 2005년 해고되자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회사인 현대차가 실질적인 고용주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구제신청과 행정소송을 냈다.
이에 1·2심 재판부는 "현대차의 관리자가 협력업체의 근로자들에게 별도로 작업지시 등을 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근로자 파견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닥칠 파장에 곤혹스러워 하며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관계자는 "판결에 대해 공식 입장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경우 추가로 들어갈 비용에 대해서도 따로 추산한 게 없다"라고 말을 아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현대기아차 하청업체는 한껏 고조된 분위기다. 현재 양재동 사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동희오토의 해고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에게 ‘원천사용자 인정’을 요구하는 중이다.
동희오토는 기아차가 생산하는 모닝의 조립업체로 현재 충남 서산에 생산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생산라인을 기아차로부터 임대 받고 17개 인재파견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아 모닝을 생산해 오고 있다. 특히 파견업체에서 2년 근무시 정규직 전환이라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회사로 보낸 후 같은 일을 하게 하는 편법을 일삼고 있다. 일종의 돌려막기로 인력을 공급하면서 이익을 최대화 하고 있다.
한 인재파견업체 관계자는 “비정규직으로 2년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회사의 부담이 커 돌려막기 수단을 사용하는 파견업체가 많다”며 “특히 대기업과 거래를 하는 업체는 쉬쉬하면서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농성중인 동희오토의 한 노동자는 "울산공장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일하는 반면 동희오토는 완전한 도급의 형태로 형식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며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같은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일요일 아침, 농성 중이던 해고노동자가 현대기아차가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농성중인 한 노동자는 "폭행을 당한 직후 경찰을 불렀으나 이미 용역업체 직원은 사라졌고 경찰은 사유지라는 이유로 쫒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초경찰서 관할 파출소측은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확인 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