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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한강의 터줏대감인 한강철교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많은 변천사를 겪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1897년 인천 우각현에서 공사를 시작해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 노선을 건설했다. 1900년에 노량진 서대문 노선을 완공했는데 이때 한강철교가 태어났다.
한강 이남으로 노량진역에서 끊겨 있던 경인선을 용산역과 남대문역(현 서울역)까지 연장하기 위해 건설됐다.
110년이 지났음에도 한강 철교는 여전히 건재해 경인선, 경부선, 호남선을 잇는 한국 철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에 제작할 당시에는 고종 황제가 미국의 제임스 모스와 교량 건설 계약을 맺어 한강철교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계약에 따르면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다리 한쪽이나 양쪽에 보도를 만들어야 하며, 선박의 운항을 위해 개폐부를 만들거나 충분히 높게 가설하도록 규정했다.
1897년 3월 29일 기공식을 올리고 철도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곧 인력난과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에 더하여 일본의 압력으로 위협을 느낀 모스는 철도 부지의 토목 공사가 끝날 무렵 일본에 부설권을 넘겼고 계약을 인수한 일본은 뒤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보도 가설을 하도록 된 계약을 파기, 한동안 한강철교 건설이 중단됐다.
시일을 끌다가 1900년 7월에야 완공한다. 완공 당시 한강철교는 근대식 토목 공사로는 가장 규모가 컸다.
한강철교에는 교각이 9개였는데, 모스가 그 가운데 제1, 2, 9호 교각을 만들었으나 일본이 안전도 검사를 한 뒤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다시 가설했다. 모스가 만든 교량의 양 기둥으로 그대로 사용했다. 철교를 만들 때 들어간 재료는 철강이 1,200톤, 벽돌이 120만 장, 시멘트가 5천 포, 석재가 5만 개 이상이며, 상부구조를 이루는 철재는 61미터짜리로 미국산이었다. 완성된 교량은 628.9미터였고, 교각은 위쪽을 뾰족하게 하여 장방형으로 만들었다. 아래 둘레는 8.2미터, 폭은 2.1미터였고, 위쪽 둘레는 7.6미터, 폭 1.8미터이며, 교각의 수면 위 높이는 11.2미터였다. 북쪽 교대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유실되어 다시 세웠다.
이후 1912년 9월에 한강철교 B선이 개통됐고 해방을 1년 앞둔 1944년 8월에 C선이 만들어져 한국 철도의 위상을 높였다. 일제 해방이후에는 한강을 대표하는 교량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북한의 진입로를 막기 위해 철교 A·B·C선 모두 폭파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1957년 C선을 복구해 열차가 다시 운행됐고 1969년에 A선과 B선이 만들어졌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뒤 정보화 사회로 발전된 1994년 12월에는 한강철교 D선이 개통됐다. 사회와 경제가 이전보다 발전되면서 유동인구도 많아져 교통량을 개선하기 위해 철교 한 개를 더 건설했다.
지난 2006년에는 한강철교 A·B·C가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서울·수도권과 전국 지방을 이어주며 대한민국 철도 발전의 교도부를 마련한 한강 철교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전국 열차운행을 주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