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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5주년…일제 잔해 상흔 아직 남아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돼 독립을 맞이하게 됐다. 이후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권 안에 들며 선진국 도약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65년의 세월이 흘려도 아직까지 일제가 남긴 상처가 이곳저곳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의 주권을 빼앗고 완벽하게 통치하기 위해 우리의 민족의식을 고취할만한 문화재들를 훼손하고 산림과 논밭을 파괴해 무분별하게 개발을 일삼아 깊은 상처를 안겼다.

특히 대두가 되고 있는 사례는 고양시에 자리잡은 '행주대첩비'이다. 1592년(선조 25년)때 임진왜란때 부녀자들이 스스로 전쟁에 합세해 행주치마로 돌을 모아 무기로 삼았고 일본군에게 타격을 입혀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이후 행주대첩은 임진왜란의 3대 대접으로 떠올랐고 이를 기념해 1602년 권율 장군의 공을 기리고자 행주대첩비를 세웠고 지금은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74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행주대첩비를 훼손해 우리역사의 큰 상처를 남겼다.

비 앞면 머리부분에 있는 비명에는 글자의 특정 부분이 통재로 훼손됐고 움푹 파여있는 부분도 발견됐다. 글씨 주변부가 애초 글자가 음각된 깊이의 절반정도 깊이 퍼여 있었다.

1943년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에 조선총독부가 각 도 경찰부에 '유림의 숙정 및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라는 문서를 각 경찰부에 보내 행주대첩비를 비롯해 운봉 황산대첩비, 해남 명량대첩비, 등 20여개의 승전비를 일부 폭파하거나 훼손했다.

한국의 산림 훼손도 일삼아 왔다.

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에 한 산재한 살림철도가 있다. 이 철도는 일제가 임목수탈용으로 설치해 60년 넘게 이 자리에 계속 남아있었다.

일제는 당시 용소골을 비롯해 강원일대 태백산맥에서 벌채한 원목을 운반하기 위해 호산~가곡간 13km에 이르는 철도를 설치했다. 이후 이 철도는 더 연장됐고 벌목작업도 함께 확대됐다.

역사의 아픔인 임목 수탈용 궤도 일부는 복원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내달 4일부터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