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를 4년 가까이 진두지휘해 오던 남용 부회장이 지난 17일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다. 후임에는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이 새 사령탑으로 지목됐다.
경영진이 임기중에 교체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LG전자의 전통에서 벗어나 파격적으로 단행된 인사조치였다.
그러나 남 부회장은 전반적인 실적부진과 스마트폰 시장에 대비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이미 오래 전에 자진사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오너와 이사회에 이 같은 뜻을 전했다고 알려졌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을 LG전자로 긴급수혈하게 된 까닭도 남 부회장의 사임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스마트폰 시장을 일찌감치 준비하고 앞서 나간 반면 피쳐폰(일반폰)에 매달려 상대적으로 뒤처지게 됐다는 것이 이번 조치에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LG전자는 이 같은 부문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물론 시장점유율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올 하반기 적자가 예상된다는 어두운 전망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구 회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성장엔진을 확보해 온 구본준식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는 판단에서 ‘새판 짜기’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구 부회장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그는 LG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 LG화학, LG반도체, LG필립스LCD를 두루 거치면서 직설적인 화법과 확장 위주의 경영전략을 펼쳐 업계에선 전형적인 ‘공격형’ 경영인으로 알려졌다.
LG의 주력인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그룹 내 2인자로 불린다.
전문가들은 최근 LG전자가 보여준 최악의 실적은 남용 부회장의 단기 성과주의가 만든 과오라며 오너 경영자의 복귀로 인한 큰 그림의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회사 안팎에서 구 부회장이 특유의 추진력과 카리스마적인 면모를 보이며 신속한 투자와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안팎의 기대를 등에 업고 LG전자에 입성하게 된 구 부회장의 가장 큰 선결과제는 중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해 가전 위주의 사업전략을 다시 편성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새로운 전략적 출발선을 긋기 위해 시작점부터 대대적인 쇄신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LG전자 뿐만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도 올해 말 쇄신형 인사가 뒤따를 것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가 구본준 부회장 체제로 바뀌면 그 후속으로 조직정비가 이뤄질 것이고 그룹 내에서도 인사 이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CEO가 실적 부진에 따라 물러난 마당에 사장급 이하 경영진과 임원들도 자신들의 진퇴여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인사만 단행하게 되더라도 그 폭이 예년에 비해 커질 것이 분명하다.
반면 대규모 해직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아직까지 우세한 까닭은 LG의 기업문화 때문이다.
LG의 한 고위 관계자는 “LG는 경영성과 못지 않게 인화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으나 이번에 남 부회장이 스스로 경영성과에 책임을 지는 새롭고 아름다운 선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룹 주요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LG상사 CEO도 구 부회장이 겸임하기보다는 새로운 인물이 자리를 메울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