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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의 연기금, 이번에도 구원투수 되나?

[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미국 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 우려와 유로존 재정위기 재부상으로 국내 증시가 연일 폭락하자 대부분의 투자들이 매도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연기금이 저가 순매수에 나섰다. 이로 인해 국내외 돌발악재가 터졌을 때마다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섰던 뚝심의 연기금이 이번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가가 폭락할 때 오히려 과감하게 매수에 나서는 연기금은 '하락장의 수호신(守護神)', '증시의 구원투수'라고 불리고 있다.

연기금은 코스피가 개장 초기 100포인트 가까이 급락한 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5천억원 가까이 순매수했다. 전날까지 매수하던 개인투자자들까지 공포에 질려 대규모 매도로 전환하는 바람에 연기금은 이날 외국인의 매도공세에 홀로 맞섰다.

연기금은 외국인이 내다 판 포스코와 삼성전자, 기아차, 하이닉스, KT 등 급락한 대형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코스피가 1,920선대까지 밀렸다가 1,940선 후반으로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연기금의 이런 매수세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지난 나흘간 코스피가 229포인트 가까이 폭락하는 장에서 외국인은 2조원 가까이 팔아치웠다. 하지만 연기금은 2일 1천849억원, 3일 2천476억원, 4일 354억원, 5일 4천852억원 등 모두 9천531억원을 순매수했다.

미국 신용등급강등이라는 악재에 주가가 다시 한 번 곤두박질친 8일에도 연기금은 4079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4000억원 넘게 순매수했다. 연기금의 순매수가 없었다면 8일 주식시장은 더 폭락했을 것이다.

이러한 순매수를 통해 지난 일주일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현대차·한국전력이 통째로 날아간 것과 같은 규모인 170조의 시가총액(상장된 주식 전체의 가격을 합한 것)이 사라지는 동안 연기금은 오히려 총 1조3611억원을 순매수했다. 순매수 금액이 일일 평균 2722억원이다. 그 전주와 그 이전 주에 일일 평균 각각 509억원, 167억원 순매수한 것과 비교하면 순매수 금액이 많이 늘어났다.

연기금이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종목은 '경기 방어주'가 아니라 개인 투자자나 기관들이 팔아치우고 있는 '경기 민감 주식'이다.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기아차로 5거래일 동안 총 973억원어치를 샀다. 이어 LG화학(968억원)·삼성전자(951억원)·하이닉스(728억원)·현대중공업(726억원)·포스코(692억원)·현대모비스(548억원) 순으로 순매도했다.  

연기금이 당분간 이런 매수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투신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단기 대폭락으로 자동차 등 수출 주도주에 저가매력이 생긴데다 연기금의 자금 여력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로터스투자자문 박성민 대표는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투자비중을 19.3%까지 올리기로 했는데 이번 급락사태로 비중을 늘릴 명분이 생겼다. 대외적인 돌발변수에 의해 주가가 급락해 현대차 등의 주가수익비율(PER)이 8배 수준으로 떨어졌다. 충분히 매력적인 가격이다"고 말했다. 저가 종목을 사들여 1∼2년 보유한다면 수익률 면에서 승산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또 "연기금 쪽에서 자금 집행 가능성이 크고 펀드를 환매한 사람들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개인들의 대기성 자금도 급속도로 늘고 있어 수급적인 측면에서 외국인의 공백을 메울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주가가 급락한 지난 3일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펀드로 1천452억원이 들어왔다. 또 4일 기준으로 증시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이 전날보다 1천900억원 늘어난 18조6천660억원으로 사상 최대로 집계됐다.

삼성자산운용 전정우 주식운용본부장은 "연기금은 자금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구조다. 주가가 지금처럼 급락한 상황이라면 주식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셈이다. 다만, 공격적인 매수는 주가 추이를 본 뒤에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 이선엽 투자전략팀장은 "연기금이 5일 4천800억원가량을 샀는데, 이를 지수 방어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다. 시장을 가장 보수적으로 보는 매매 주체들이 주식을 샀다. 이는 지수가 저점 부분에 근접해 바닥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은 대외변동성이 안정될 때까지 국내 주식을 사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과 투신 등 시장 참여자 중 4분의 3 정도는 시장을 관망하거나 비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금이 시장을 떠받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만 강 팀장은 "과거 경험으로 보면 싸게 사서 장기적인 이익을 내려고 할 수 있다. PER 9배 이하에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매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