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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그리스 답보협상 놓고 유로존 갈등 표출

[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유로존 정상들이 지난달 합의한 그리스 2차 지원 프로그램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암초'를 만났다. 2차 프로그램 추진을 위해 핀란드와 그리스가 타결한 구제금융 담보협상을 둘러싸고 유로존 내에서 갈등이 표출됐기 때문이다. 유로존 국가들 간의 이해가 엇갈린 탓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그리스 2차 지원안과 유럽 구제금융 체계인 유럽재정안정기구(EFSF) 기능 확대 등 정상회의 합의사항들이 신속히 이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일고 있다.

지난달 21일 유로존 정상들은 지난해 약속한 1천100억유로의 구제금융과 별도로 1천590억유로의 2차 지원 프로그램을 그리스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중 1천90억유로는 EFSF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민간채권단이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1차 구제금융 지원은 그리스와 유로존 회원국이 `양자 협정'을 통해 개별적으로 자금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와 달리 2차 지원은 EFSF가 자금을 지원한다. EFSF는 회원국들의 보증 아래 국제금융시장에서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그리고 그리스 2차 지원 프로그램, 재정 위기 전이를 막기 위한 EFSF 기능 확대 등 정상회의 합의사항들은 유로존 모든 회원국의 승인을 얻어야 최종 확정된다. 오는 9월 중 각국 의회의 승인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돼왔다.

이런 가운데 핀란드와 그리스가 타결한 구제금융 담보협상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주 16일(현지시간) 핀란드가 EFSF에 제공하는 보증의 부실위험을 막고자 그리스로부터 일정 규모의 현금을 담보로 확보하는 협상을 타결했다고 핀란드와 그리스 정부가 발표했다. 그리스는 구제금융 금액의 일정 비율의 현금을 핀란드에 담보로 맡기고, 핀란드는 이에 이자를 제공하면서 담보금을 위험이 낮은 장기 자산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양국이 합의한 담보조건은 유로존 회원국들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그런데 핀란드와 그리스의 담보협상에 대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등 5개국이 핀란드만 담보를 확보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들은 담보 확보를 추구한다면 핀란드만 아니라 모든 회원국이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핀란드-그리스 담보협약은 정상회의 합의사항들과 마찬가지로 각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일부국이 거부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유로존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하는 게 불가피해졌다. 핀란드가 담보를 포기하거나 유로존 일부 또는 전체가 공동으로 담보를 확보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해 보이지만 절충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갈등은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입장 정리를 하지 않은 탓에 불거졌다. 핀란드가 담보확보를 전제로 2차 지원안에 동의했음에도 정상들은 합의문에서 핀란드를 명시하지 않은 채 "EFSF에 대한 보증의 위험을 보전하기 위한 적절한 담보 협약이 있을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이번 담보 갈등은 유로존 재정 위기 우려를 재부상시켰다. 그리스 2차 지원 프로그램은 물론 유로존 재정 위기 전이를 차단하기 위해 EFSF 기능을 확대키로 하는 정상회의 합의사항의 승인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내 갈등 표출은 EFSF 기금 증액과 최종적인 수단으로 여겨지는 유로본드 도입을 둘러싼 이견과 더불어 유로존 정상들의 재정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켰다.

아울러 이번 갈등이 EU·유럽중앙은행(ECB)·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다음주 그리스의 재정 긴축 프로그램에 대한 분기별 점검을 시작하는 일정을 앞두고 불거져 유로존 재정 위기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다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트로이카의 분기별 이행 점검 결과는 오는 9월 예정된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6차분 승인 여부를 가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