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최근 사의를 표명한 김쌍수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25일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주들로부터 2조8천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면서 사임을 결심했다"며 "패소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공기업이라도 비즈니스를 하는 상장회사는 민간회사로 보고 (운영상) 독립권을 줘야 하는데 아직도 정부는 공기업을 정부 예산을 받아쓰는 기관으로 보고 적자가 나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공기업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전이 공기업이라도 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주주가치를 생각하면서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상응하는 시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하고 3년 전 부임 이후 원가절감, 조직·인사 혁신, 해외사업 확대 등을 통해 많은 자구 노력을 기울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회사 적자를 흑자로 돌리는 것은 해내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한전이 이러한 사태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한전 소액주주 14명으로부터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2조8천억 원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주주대표소송을 당한 뒤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29일자로 사장직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김 사장의 임기는 26일 끝나지만, 후임 사장 인선 지연으로 인사 규정에 따라 임기가 자동 연장되면서 직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전은 지분의 51%를 정부가 가지고 있다. 24%는 외국인이, 나머지는 일반 소액 주주가 가지고 있는데, 김 사장은 소액주주 14명에게서 소송을 당했다. 그는 이번 소송과 관련, "3년간 열심히 일하고 봉사한 결과가 피소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했다"며 "주주들이 제소한 이상 식물사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개인적 양심으로도, 조직원이나 주주를 생각해서라도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개인적인 명예도 훼손됐다. 엄밀히 따져 말해 우리(본인)가 패소하면 정부를 향해 소송할 수도 있다. 우리가 패소하면 공기업에 대한 줄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사의를 표명한 김 사장은 MB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공기업 민영화의 ‘아이콘’과 같았다. 그는 LG전자 부회장 재임 시절, 사양산업으로 치부됐고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도 크게 뒤져 있던 LG 에어컨과 TV 등 백색가전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냈다. 그런 김 사장이 공기업인 한전의 사장이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부가 이렇게 민간기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화려한 경력의 스타 CEO를 한전의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공기업도 사기업 못지 않은 경쟁력과 성과를 거두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공기업의 민영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재임한 3년 동안 한전은 계속 적자를 보았고, 이 기간 동안 누적 적자만도 무려 6조1000억원에 달한다.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가 주주들에게 소송까지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한전과 김 사장은 그동안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 현실화와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해왔지만, 공기업으로서 물가안정을 위해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전기요금은 여전히 원가를 밑돌고 있고(전기요금 현실화율 90.3%), 이 때문에 올 연말에는 부채비율이 15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사장은 "공공요금이 물가에 영향을 주더라도 (원료비 연동제를 통해) 조금씩 요금을 올렸다면 내년에는 흑자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전기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지 않으면 한전의 적자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도 한전의 전기세 인상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8월 1일 전기요금을 평균 4.9% 인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한전이 애초 요구했던 전기요금 인상 폭은 17~18%였다. 지난 10년간 등유 가격은 93%, 경유 가격은 121%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14.5%밖에 오르지 않아 원가의 90.3%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이었다. 17~18% 인상도 큰 인상폭은 아니었던 셈이다.
특히 산업용 요금이 현실화에 많이 못 미치는 것에 대해 정부가 기업들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김 사장은 "산업용 요금을 올리더라도 기업들이 크게 민감해 하지 않는다"며 산업용 전기요금의 추가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기업들은 연초에 유가, 전기요금, 물가인상 폭 등 주변여건을 감안해 사업계획을 세운다"며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 때문에 (기업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수업종을 제외하면 원가에서 전기요금 비중이 3~4% 정도"라며 "전기요금을 10% 올려도 원가에서 0.3~0.4% 올라가는 정도밖에 안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