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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총재 라가르드 `직설 화법'에 유럽 반발

[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주최의 중앙은행장 연례 잭슨홀 회동에서 유럽의 채무 위기 심각성을 강도높게 지적하며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한 것에 대해 유럽 당국자들의 반발이 거세다고 외신들이 보도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특히 유럽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유럽 은행의 자본 건전성에 직격탄을 날려 유럽 당국자들을 당혹하게 하고 있다.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각) 잭슨홀 연설에서 "최근의 상황은 세계 경제가 새로운 위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세계 경제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으며 정책 대안의 폭도 이전보다 좁아졌다"면서 그러나 "회복 방안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포괄적인 정책적 결정과 함께 과감한 정치적 행동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라가드르 총재는 유럽 은행들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지적하면서 "유럽 은행들이 정부 부채위기와 저성장 국면에서 버텨내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며 "긴급한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 은행의 자본 확충이 위기 확산의 고리를 자르는 데 있어서 핵심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채무위기가 유럽의 핵심 국가로 전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라가르드의 이 발언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채무 위기 국가들의 채권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은행의 건전성 문제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는 특히 "극히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는 건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혀온 유럽의 공식 입장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유럽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유럽은 지난 3년간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스페인에서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은행이 지불 불능에 빠지거나 거기에 근접하고 있다. 또 지난 7월 90개 유럽은행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도 8개 은행 전체적으로 25억 유로(36억 달러)의 자본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유럽 은행들이 추가 재정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직설적으로 이 문제를 건드려 마치 벌집을 건드린 형국이 된 것이다.

FT는 이번 라가르드의 연설과 관련해 29일 '유럽 당국자들이 라가르드의 발언에 대든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라가르드가 유럽은행의 재무 건성정을 경고한 발언이 잘못된 것이라고 유럽 당국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29일 '라가르드가 직설 화법을 택했다'는 제목의 별도 분석에서도 잭슨홀 회동에서 중앙은행장들이 과다한 정부 부채와 재정 적자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라가르드가 이처럼 직설적으로 유로 은행의 자본 취약성을 걸고 넘어간데 대한 불만이 많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유로 채무 위기로 역내 은행의 재무상태가 심각하게 위협받으면서 채무 위기가 더욱 확산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 은행의 "자본재구성이 시급하다"는 라가르드의 발언에 대한 반발이 특히 크다고 분석했다.

한 관계자는 FT에 "일부 국가(유로 재정 취약국)의 경우, 최근 몇주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이 현실"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라가르드가 은행의 자본 확충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장을) 혼란하게 하는 메시지"라고 비판했다.

신문은 유로 당국자들은 라가르드가 역내 은행이 현재 처하고 있는 어려움을 간과하고 있으며 유럽 은행의 당장 시급한 과제는 "유동성 확보"라고 반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럽 당국자들은 라가르드의 발언이 자금 사정에 있어서 한계에 처한 일부 유럽 은행의 자금줄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당국자들은 라가르드 총재가 "6400억달러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은행 자본 확충에 써야 한다"는 뜻을 피력한 것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신문에서 이들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역내 은행의 자본재구성의 자금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가장 그럴싸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잭슨홀 연설에서 유럽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하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신문은 중앙은행들이 부채와 적자 해소를 위한 방안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기 때문에 라가르드의 '직설화법'에 대해 반발이 더 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FT는 `라가르드가 (막대한) 채무의 추악스런 진실을 부각시켰다'는 제목의 29일자 사설에서 대부분의 정책 당국자들이 어물쩍 넘어가려는 채무 문제를 라가르드가 강도높게 부각시킨 점을 지적하면서 문제 제기는 옳았다고 지적했다. 또 그가 논의를 공론화시킨 것은 바람직하며 이를 계기로 정책 당국자들도 현실을 직시하고 비슷한 용기를 보여줘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