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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가해자들 1.4%만 해고... 피해자들 2차 피해까지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희롱이 적발되어도 가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민주노총 여성 조합원 1천6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중 성희롱을 당하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이 무려 78.9%에 달했다.

가해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사과를 요구한 예는 11.2%에 불과했다. 상사나 고충처리기구 등 제삼자에게 알리고 조치를 요구했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또 성희롱 사건 후 피해자가 문제 삼아 가해자가 해고됐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가해자가 정직, 감봉, 견직 등의 징계를 받은 사례는 아예 없었다.

가해자가 부서나 근무지를 옮겼다는 응답도 4.5%밖에 안됐다. 가해자에게 피해자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경우도 2.7%에 그쳤다.

이에 반해 가해자 신상에 아무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은 46.8%로 절반에 가까웠다. 성희롱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직장들이 이렇게 전반적으로 성희롱 가해자에게 미온적이다 보니 피해자가 2차 고통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성희롱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서나 근무지를 옮겨야 했다는 응답이 10.6%나 됐다. 심지어 피해자가 해고되거나 근로계약 경신을 하지 못한 경우(2.9%)도 있었다. 피해자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거나(6.7%) 부서나 근무지 이동을 자청한 경우(14.4%)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가해자는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가 되려 2차 피해를 보는 문화에서는 대다수가 성희롱을 당하고도 침묵하게 돼 성희롱 근절이 더욱 어려워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성희롱 피해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가해자가 적절한 조치를 받도록 하려면 성희롱 피해구제 절차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고충처리기구는 가해자와의 인간적 유대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국가인권위원회나 고용노동부에 진정이 접수돼도 조사 과정이 길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사업주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파악한 경우 잠정적으로라도 근무지를 조정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곳에서 일하지 않도록 하는 등 피해자 보호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인권위에 진정하더라도 인권위 권고가 강제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