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진석 기자] 거듭되는 미국과 유럽발 악재로 세계 경기악화 우려가 점점 커지며 '제2 금융위기'가 거의 현실화되자 외국인이 빠르게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내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신용위기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이자 유럽계 외국인을 중심으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자금을 빼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3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8천662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지난달 5조9천245억원 어치를 순매도한 데 이어 계속되고 있는 매도 공세다.
특히 유럽의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자 유럽계 외국인이 빠르게 주식시장을 이탈하고 있다. 이달 들어 22일까지 유럽계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5천837억원으로, 같은 기간 외국인 전체 순매도액1조8천여억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유럽계 중에서도 재정위기가 불거진 남유럽 피그스(PIIGS) 국적의 외국인이 3천340억원 어치를 순매도해 가장 많은 자금을 빼갔다. 그리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도)가 큰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도 2천178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3개 대형 은행 신용등급도 강등돼 신용 위기가 미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미국계 외국인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주식을 팔고 있다. 이달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미국계 자금은 3천300억원으로 집계됐다.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지만 규모는 줄고 있다. 이달 들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은 1천658억원의 순투자를 나타냈다. 순투자액은 채권 순매수액에서 만기상환 등으로 유출된 자금을 뺀 금액이다.
외국인 순투자액은 지난 7월에는 2조9천26억원에 달했다. 그러다 지난달 3천403억원으로 급격히 줄어든데 이어 이달에는 더 줄어든 1천658억원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순유출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다행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유럽계 외국인은 이미 순유출로 돌아섰다. 채권시장에서 유럽계 자금은 이달 1조154억원의 순유출을 나타냈다. 미국계의 채권 순투자 규모는 5천13억원으로 지난달 순투자액 1조121억원에 비교하면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런 가운데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유럽계 외국인을 중심으로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 통화당국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로 미 국채 장기물 금리가 하락하면 국내 채권 금리도 장기물 위주로 하락해 외국인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원화 가치가 최근 급격히 떨어진 상황도 외국인의 증시 이탈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보증권 김형렬 투자전략팀장은 "코스피가 주요국 주가지수들과는 달리 지난달 저점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원화 가치가 급락한 뒤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로 외국인의 공격적 매도 공세가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