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코스피가 전저점인 1700선이 무너졌다. 문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말 그대로 암흑증시다. 다음 지지선으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인 1,650선이 거론되고 있지만, 유로존 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프랑스 2,3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과 크레디 아그리콜 등 프랑스의 대형 은행에 이어 자산 기준으로 미국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비롯 시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3개 대형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던 무디스가 오늘은 그리스 은행 8곳의 장기 신용등급을 두 단계씩이나 강등했다. 이 소식은 오후장의 폭락을 주도한 악재였다.
무디스는 S&P에 의해 이미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언급해놓은 상태라 국내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재료들은 앞으로도 지뢰처럼 줄줄이 놓여 있다.
2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03.11포인트(5.73%)나 대폭락한 1,697.44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기준으로 지난해 7월7일(1,675.65) 이후 최저치다.
코스피 1,700선은 지난달 폭락장에서 두 차례나 마지노선 역할을 했다. 그만큼 오늘 주가가 폭락해도 1,700선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치가 높았으나, 제대로 된 반등 시도 한번 없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이날 오후 2시49분 1,689.69까지 내려갔던 코스피가 오후 2시52분에 다시 1,700.47로 잠시 치고 올라가기는 했지만 얼마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1,700대 아래로 무너지며 장을 마감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 증시는 이미 전저점이 붕괴했다.
22일(현지시각)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3.51% 떨어지며 연중 최저점으로 추락했다.
재정 위기가 커진 유럽 시장은 더욱 심각하다.
프랑스 CAC 40 지수는 5.25% 폭락하며 전저점이 무너졌다. 포르투갈과 폴란드 증시도 연중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내 선진국증시도 전저점 이탈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정훈 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부 유럽증시 외에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월드인덱스 등 주요 지수가 연중 저점이 붕괴했다. 국내 증시도 키 맞추기 차원에서 전저점이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대외 변수들이 너무 많은 것도 주가 전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간밤에 미국과 유럽 주가지수가 폭락한 것은 최근 IMF 등 국제기구들의 우울한 경제 전망이 잇따라 나온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까지 경기 하강을 언급하며 불안심리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 속에 대형 은행들의 '뱅크런(예금 대량이출)' 가능성도 공포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프랑스 최대 은행인 BNP 파리바는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경고를 받고서 큰 손들이 자금을 찾는 뱅크런 상황을 맞기도 했다.
동양종금증권 김주형 투자전략팀장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대외 변수가 너무 많다. 공포심리가 진정되려면 적어도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은 없다는 믿음이 생겨야 한다"며 "그리스의 긴축안이 의회를 통과해 트로이카 실사단이 구제금융 지원을 확정해야 공포가 진정될 것이다. 29일 독일의 의회승인 결과도 주목해야 한다. 다음주 초나 이달 말까지 그리스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주가는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다음 지지선으로는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인 1,650선이 거론된다. 다만, 유럽 위기가 리먼 사태와 같은 신용경색 위기로 확산하면 이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그리스의 일방적인 디폴트 선언이나 유럽 은행의 자본확충 실패, 독일 의회의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승인 불발 등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불거진다면 리먼사태와 같은 신용경색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 이때는 1,650선의 지지력도 의미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