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리는 한 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샌델 교수는 이날 오전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집필 중인 차기작 '시장과 정의'(가제. 미래엔 출간 예정. 원제 'What money can't buy')의 주제와 연관 지어 최근의 이슈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규정했다.
샌델 교수는 이어 "이번 월가 점령 시위는 금융위기 자체에 대한, 그리고 미국 정부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분노와 좌절이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은행과 투자회사들이 호황기에 얻은 많은 이익은 가져가면서 위기가 생겼을 때는 구제금융을 통해 피해가 납세자들에게 전가되는 점, 즉 "이득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공유화되는" 불공정한 행위에 대한 분노가 결집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 과정에서 정부가 금융회사에 대해 구제금융에 따른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금융업계의 무모한 행동을 제어하지 못했다며 "금융업계에 대한 공공의 분노는 곧 정부에 강한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4월께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간될 예정인 '시장과 정의'는 국내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의 연장선상에서 시장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묻는 책이다. 최근의 월가 시위 등의 이슈와 연계되어 또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샌델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돈, 시장과 관련해 생기는 윤리적 딜레마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며 "돈과 시장이 평등, 지역사회, 사회적 결합 등 다른 중요한 가치들과 언제, 어떻게 갈등을 빚게 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시장의 논리가 전통적으로 시장(에서만의) 논리가 아닌 가치관이 적용되던 생활영역에까지 침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은 생산활동이라는 측면에선 굉장히 효율적이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데 답을 할 수 없다”며 “시장사회는 모든 것이 시장가격으로 평가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래서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무엇인지와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는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시장의 강점뿐만 아니라 시장의 한계도 많이 느꼈다. 시장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치 있는 도구지만 불평등을 심화시키기도 한다"며 "이제 시장의 장점을 어떻게 잘 이용하고, 아울러 시장이 비시장적인 영역에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와 관련해 미국 텍사스 댈러스시에서 학생들이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2달러를 주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돈을 주다 보면 오히려 독서라는 가치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아이들은 독서 자체가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또 "최근 한국에서 정의와 공정성, 공공선에 대한 공공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감명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무상급식과 관련한 논의에 대해 "정의와 공정성과 관련한 두 철학적 관점의 대립이 실생활에서 구현된 흥미로운 사례"라며 "외부인으로서 어떤 입장이 옳은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주제와 관련해 기꺼이 공개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