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삼성이 통상 12월 중순경 하던 연말 정기인사 시점을 예년보다 한 달 앞당겨 내달 계열사별로 실시한 강도 높은 감사 결과를 일괄 발표한 뒤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 예년보다 많은 임원진이 교체될 것이라는 설이 삼성그룹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관례적으로 연말에 정기 인사를 했었지만, 지난 6월 삼성테크윈 CEO를 즉각 교체하고, 사업연도 중간임에도 실적이 부진한 장원기 LCD 사업부 총괄 사장을 지난 7월 사실상 경질하고, LCD, 메모리반도체, LSI(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 등 부품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총괄을 신설해 권오현 사장을 임명하는 등 삼성이 수십년간 지켜왔던 인사 관행을 깬 바 있어 11월에 조기인사를 단행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로 인해 삼성그룹 내에서는 조기인사설을 놓고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고 온 이 회장에게 이달 말경에 계열사에 대한 감사 및 경영진단 결과를 종합 보고하고 이를 언론에 발표한 뒤 다음 달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일정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미 지난달 초부터 각 계열사에 연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장·임원에 대한 인사평가에 착수하라는 지침을 전달, 계열사들은 현재 인사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사장단 인사의 평가 기준은 일반적으로 작년 대비 실적 향상 정도와 내부 혁신성과, 주가 추이, 사내 인사관리와 S급 인재 영입성과 등 네 가지로, 이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와 관련해 삼성측은 현재 인사평가를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사 시기를 앞당기는 문제 자체를 논의한 바 없다며 조기인사설을 일축하고 있다. 지금은 관례대로 지난달부터 인사 검증을 하고 있고, 철저한 검증 절차를 통해서 12월 중순경에 정기인사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12월1일 '자랑스러운 삼성인' 시상식이 있는데, 여기서 상을 받으면 한 단계 특별승진하기 때문에 이를 인사에 반영하려면 11월에 조기인사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잡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11월에 인사를 하려면 10월까지 업무성적만을 평가해야 되는데 이는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변하면서 계열사나 사업부별 실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4분기 실적을 반영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실적만 놓고 서둘러서 인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임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역시 사장단 인사가 다음달 중순께 이뤄질 예정이냐는 질문에 "(다음달 중순에) 안한다"고 딱잘라 부인했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들에 대한 감사 결과라고 나오는 것 중 사실과 맞지 않거나 과장된 내용이 많다"며 "인사 건으로 조직이 술렁거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경제 침체 등으로 인한 주요 계열사의 실적 부진, 계열사 내부 비위, 위기에 몰린 애플 등과의 특허 소송 등 대내외 변수가 많아 이 회장이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그룹 내 경각심을 높이고 부정부패를 척결해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결심을 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조기 인사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연말 정기인사급의 대대적인 조기인사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소폭의 조기인사는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지난 6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테크윈 부정 비리 사건을 질타한 것을 계기로 그룹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과 계열사 감사팀을 대폭 강화해 '바닥 훑기식' 감사를 실시한 결과, 상당수 임직원의 나태·비리 사례가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일부 계열사의 경우 비위 사실에 연루된 인사는 물론 최고경영책임자(CEO)까지 관리 책임을 물어 임원의 20~30%, 심지어 최대 50%를 물갈이하기로 하고, 이들을 조기 퇴출시키기 위해 평년보다 한 달가량 이른 지난달 초부터 인사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3분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계열사별 또는 회사 내 사업부별 실적이 드러나는 만큼 미래전략실 전략1팀(삼성전자 담당)과 전략2팀(기타 계열사 담당)이 경영진단팀, 인사지원팀과 함께 CEO급 임원을 상대로 '영전'과 '좌천' 리스트를 작성한다는 소문도 증권가에서 떠돌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삼성자산운용 등 금융계열사 사장은 대거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는 금융계열사 인사 폭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카드는 최근 직원 관리 소홀로 고객 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되는 사고를 일으켰고, 삼성증권은 계열사 채권을 사들인 것을 숨기는 등 자본시장법을 위반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삼성생명은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작년보다 줄어드는 등 실적이 부진하다는 시장의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화재는 그룹 특별 감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전자 인사의 경우, 부품 사업을 실질적으로 도맡아 관리하고 있는 DS사업총괄 권오현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거나 공동대표이사로 선임될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최지성 부회장이 '원톱 체제'를 이끌며 조직상 권 사장을 밑에 뒀지만, 권 사장의 책임과 역할이 막중해지면서 내용상으로는 '투톱 체제'로 바뀐 상태에서 권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거나 공동대표이사로 선임되면 형식적으로도 최 부회장은 세트(완제품)를, 권 사장은 부품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된다.
부사장이 된 지 1년 만에 지난해 12월 사장으로 승진해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자리를 옮기거나 또 한 단계 올라갈지도 관심사다.
삼성 관계자는 "인사 시점이나 폭은 전적으로 이 회장 등 그룹 수뇌부가 결정하는 것이어서 임직원들은 '이럴 것이다'고 전망할 수 있지만, '이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