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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기 불황으로 국내 기업 인력 감축 나서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미국 경기 둔화와 유럽 재정 위기 등으로 인해 세계 경기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국내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건설, 금융, 항공 등 분야에서 감원이 진행되거나 검토되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건설업계는 중소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인원 감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용 절감 등 차원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외국 플랜트사업 수주 등 해외 수주 호조로 큰 어려움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부족하고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건설사들은 주택경기 장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감원에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중견건설사의 인사팀장은 "내년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유지하려 한다. 재택근무나 유급휴직 등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연합 관계자는 "벽산건설, 남광토건, 삼부토건, 한일건설, 성원건설 등이 올해 희망퇴직을 이미 했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안다. 내년에도 건설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런 희망퇴직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설사들도 구조조정에 나설 전망이다.

금융회사의 인력 감축 움직임도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378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며,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마무리하게 되면 감원 요인은 더 생길 수도 있다. 지난달 우리은행은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에 내년 초 카드사 분사 때 대규모 희망퇴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삼성그룹에서도 금융계열사 중심으로 1천명 가량을 감축할 예정이다.

지난 9월 금융당국에 의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이 합병될 때도 인원 감축이 예상된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부실 저축은행들을 P&A(자산부채 이전방식)로 합병하는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국제유가 상승과 동일본 대지진, 고환율의 영향으로 인해 감원에 들어갔다. 대한항공은 인사적체 해소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2006년 이후 5년 만에 희망퇴직제를 시행해 최근 만 40세 이상, 근속 15년 이상 된 100여명에 대한 퇴직을 결정했으며, 이런 현상은 다른 항공사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퇴직 인력은 전체 직원 1만8천명의 0.6%로 미미하지만, 대상이 직급과 급여가 높은 중견급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직 감축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제든지 인력 조정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올해 세계 경기 둔화로 수요가 줄어 큰 타격을 입은 IT 업종도 인력 감축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TV 수요가 많이 감소해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고용이 얼어붙을 전망이다.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생산업체인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영업손실이 9천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 부문도 연간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에 디스플레이 관련 부품이나 장비를 납품하는 업체는 상장사만 30여 곳에 달해 대기업의 실적 부진 여파는 중소기업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

임동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실장은 "고용 측면에서 정부가 주장했던 낙수 효과가 실패했다. 대만의 상황을 보면, 국내 IT 기업들의 고용에도 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세계 경기 장기 불황으로 인해 내년 이후 경기가 더 안 좋아지고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꺼리게 될 경우, 일부 업종에 국한된 인력 감축 바람이 전 업종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 신규 일자리가 올해 40만개 안팎에서 내년에는 20만개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 연구소의 손민중 연구원은 "수출 둔화로 제조업 일자리가 올해 하반기부터 줄어든다. 공공 일자리도 내년에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보건복지 분야와 일부 서비스산업의 고용은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