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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자금난 고비 앞두고 기업 `비상'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내년 상반기에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고비를 맞게 돼 기업들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한계기업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국채 만기가 집중돼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는 데다 한국 기업들의 회사채 만기물량도 이 기간에 사상 최대로 몰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업, 건설업, 해운업 등 위험업종 회사채에 만기가 내년 상반기에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실적악화로 기업들의 내년 현금흐름 전망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어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내년 상반기 회사채 만기 사상 최대 24조5천억원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올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난 24조5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3년전 리먼 사태 이후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행했던 회사채들의 만기도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특히 내년 1~3월에 STX그룹, 두산그룹, 한진그룹 등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돼 있다. KIS채권평가 집계 기준으로 STX그룹의 내년 상반기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는 8천200억원이며, 두산그룹은 8천750억원, 한진그룹은 1조1천900억원이다.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AA'급이 45.6%, `A'급이 48.1%로 전체의 93.7%를 차지해 대부분 투자등급 중에서도 우량등급 회사채이기는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로 경제상황이 워낙 불확실해 차환발행이 힘들 수 있다. A등급 기업들은 은행자금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럽 재정위기 심화로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면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1월 말까지 상위 39개 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는 43조2천억원에 달해 기존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9년(41조4천억원)을 뛰어넘었다.

◇ 실적 부진으로 상장사 현금흐름 악화일로

내년에는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예측치를 내놓은 129개 상장사의 내년 연간 현금흐름(연결재무제표 기준) 컨센서스(시장평균)가 추락하고 있다.

분석대상 기업의 내년 연간 현금흐름 컨센서스는 지난달 말 현재 153조7천859억원으로 4개월전 7월말 165조5천868억원보다 7.1% 줄었다.

해당기업 중 7월말보다 현금흐름 전망치가 악화한 곳은 71.3%인 92곳이며, 이 중 48곳은 10% 이상 감소했다.

기업별로는 현대상선의 내년 현금흐름 전망치가 3천201억원에서 -919억원으로 나빠졌다. 한진중공업도 2천89억원에서 455억원으로 78% 줄었다.

한진해운은 4천196억원에서 2천721억원으로 35%, OCI는 1조7천455억원에서 1조1천328억원으로 35%, LS산전은 2천681억원에서 1천812억원으로 32%, 삼성테크윈은 3천797억원에서 2천655억원으로 30% 각각 감소했다.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위원은 "하반기 실적이 악화되면서 현금흐름이 나빠진 기업들이 늘었다. 예비적인 차원에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실적이 악화돼 회사채를 발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조선ㆍ건설ㆍ해운 업종에 우려

특히 조선과 건설, 해운업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달 들어 이미 대림산업의 계열사인 고려개발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건설업종을 중심으로 부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동양증권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중 위험업종으로 분류되는 조선업종과 건설, 해운업종의 만기도래액은 5조2천억원으로 전체에서 21.2%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전체 회사채 잔액에서 이들 위험업종의 비중이 14.4%에 불과한 데 비하면 내년 만기도래액 중 위험업종 집중도가 높다. 건설업종의 만기도래액은 1조7천600억원, 조선업종은 2조1천억원, 해운업종은 1조3천400억원이다.

동양증권 강성부 채권분석팀장은 "건설업종의 경우 액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우량기업 위주로 만기가 돌아와 걱정이 덜하지만, 조선업종은 만기도래 금액이 전체 만기액의 8.7%로 평상시의 3배에 달한다"며 "조선업체들은 3년전에 수주부진으로 선수금 유입이 줄어들자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3년만기 회사채를 발행했다.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은 괜찮지만, 한진중공업이나 STX조선해양은 하반기에도 꾸준히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있다"고 밝혔다.

내년 현금사정이 악화되는 상장사 중 조선ㆍ건설ㆍ해운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11.95%에 달한다. 더구나 이들 업종 중 A등급 이하 회사는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경로가 막히게 될 가능성도 있다.

동부증권 문홍철 연구원은 "건설사가 아니라면 A등급 회사채까지는 시장에서 무난히 소화될 것이다. 하지만, B등급 이하 회사채는 개인투자자가 대부분인데, 최근 갑작스런 부도로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잇따르면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