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고명훈 기자] 핵개발 의혹이 불거진 이란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가 장고에 들어갔다. 미국 주도의 제재 움직임에 동참할 경우 이로 인한 경제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란산 원유가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의 10%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국내 기업의 이란 현지 진출과 수출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제재에 동참할 경우 에너지 수입이 차질을 빚고 경제적 손실도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 대이란 원유수입·교역량 증가 추세
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원유 조달원으로, 연간 수입량의 10%가량이 이란에서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7천260만5천배럴을 수입, 전체 도입량의 8.3%가 이란산이었다. 2007~2009년에는 각각 9.8%, 8.4%, 9.8% 로 집계돼 꾸준히 8~10% 가량을 이란에서 들여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1~10월 도입량은 이미 작년 연간 수입량을 넘어선 7천423만4천배럴로 전체의 9.6%에 달하고 있다. 수입 단가는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한국과 이란의 교역액도 고유가 지속과 우리 기업의 대이란 수출 호조로 급증하는 추세다.
같은 날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10월 수출은 49억달러, 수입은 95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2.8%, 61.5% 증가했다. 10개월간 교역액이 145억달러에 육박하면서 종전 최대치인 2008년 연간 교역액( 126억달러)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이란에 주로 선박과 플랜트, 철강 등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한국 승용차는 이란 완성차 수입시장에서 최근 수년간 40~50%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일본, 독일을 제치고 선두를 지키고 있다.
1965~2010년 이란에서 확보한 건설수주는 119억4천100만달러로 국가별 순위에서 8위에 오를 정도로 이란은 중요한 시장이다.
◇미 전방위 압박에 전전긍긍… 제재 땐 후폭풍 클 듯
이런 가운데 정부가 미국의 압박을 수용해 이란에 대한 제재에 들어간다면 양국 교역관계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이란 석유화학가스, 석유가스개발 사업을 지원하는 재화와 용역을 제재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이란산 석유화학제품만 놓고 보면 수입액이 연간 3억달러 수준으로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수입을 중단해도 당장 영향은 크지 않다. 그러나 제재에 동참할 경우 이란의 보복성 대응으로 인해 이란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특히 이란으로부터 원유수입이 막힐 경우, 다른 수입처를 찾아야 하지만 양이 많아 대체 수입원 확보가 쉽지 않고 도입단가도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의 정유·석유화학 플랜트, 조선 수출도 움츠러들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에너지부문 관련 기업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고 중기적으로는 건설 플랜트 부문에서 이란 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중동 플랜트 시장에서 중국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 부문도 타격을 입을 수 있는데, 미국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를 중단시킨다면 양국간 교역 유지를 위해 지난해 이란 중앙은행과 개설한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원화결제라인도 흔들릴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기업 결제업무를 지원하는 계좌여서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거래 중단 결정을 내린다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이란 제재에 대해 쉽게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든 악영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원자력협정 4차 개정 협상을 위해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은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만나 제재 동참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이란 문제를 놓고 관계부처들이 실무협의를 해왔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정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섣불리 제재했다가는 이란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너무 소극적이면 미국과의 관계도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이란 제재에 대한 정부의 고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