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고명훈 기자] 남북관계 전반을 포괄한 '바이블'로 평가되는 남북 기본합의서가 오는 13일로 체결 2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수준이라 정부는 특별한 기념 행사 없이 20주년을 조용히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남북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이른바 남북 기본합의서는 지난 1991년 12월13일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원식 국무총리와 북한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서명한 것이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1988년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의 제의로 8차례에 걸친 예비회담과 1990년 9월4일부터 시작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도출된 구체적 산물로, 당시 노태우 정부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동구 공산권과 구소련의 붕괴 등에 따른 탈냉전에 대응해 북방정책을 펼쳤고, 북한과도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섰다. 북측도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에 따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측과의 대화 모색에 나선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흐름을 타고 남북은 1992년 1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까지 채택했다.
기본합의서는 서문과 제1장 남북화해, 2장 남북불가침, 3장 남북교류, 4장 수정 및 발효 등 총 4장 25개조로 이뤄졌으며, 한반도 통일이 남북의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할 때까지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기본합의서는 서명 이듬해인 1992년 2월 발효됐으며, 이후 2000년 6ㆍ15 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ㆍ4선언 등 각종 남북 합의의 토대가 됐다.
이런 가운데 기본합의서는 올해로 서명 20주년을 맞았지만, 지난해 터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 북측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남북이 포격을 주고받는 등 남북관계는 기본합의서 이전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기본합의서 체결 2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북관계 상황을 감안해 20주년에 특별한 이벤트를 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진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합의서 체결 20주년을 맞아 남북이 모두 합의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서명 당사자였던 정원식 전 총리는 "합의정신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특히 지난해 천안함ㆍ연평도 포격도발 등으로 남북관계가 크게 악화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남북이 20년 전 합의정신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무력도발을 중단하는 것이 기본합의서와 이후 체결된 비핵화 공동선언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남북관계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지난날의 합의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면서 "남북이 7ㆍ4 공동성명과 기본합의서, 6ㆍ15 남북공동선언, 10ㆍ4선언의 합의정신을 시대 상황에 맞게 계승하고, 필요하면 개선하는 것이 남북관계 발전의 일관성과 추동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