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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별세

[재경일보 김영은 기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 타계했다. 향년 64세.

'1970~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 `민주화의 대부'로 통하는 김 고문은 유족과 민주통합당 이인영 전 최고의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64세 일기를 마무리했다.

김 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근본적 치료가 안 된데다 폐렴, 신장염 등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병세가 급속히 악화,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이날 숨진 김 상임고문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하고 독일 함부르크재단으로부터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서울대 재학중이던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그는 민청련 사건·전민련 활동 등으로 수배와 투옥을 되풀이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인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 등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가 2006년부터 투병해 온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 고문은 1995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뒤 이듬해 서울 도봉갑에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내리 3선에 올랐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을 하고 "아름다운 꼴찌를 기억해달라"며 경선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좌절을 경험했다.

이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역임했으며,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진보세력까지 포함하는 민주세력 대연합을 시대적 과제로 삼아 통합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내년 총선에서 재기를 모색해왔다.

유족은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부인 인재근씨와 1남1녀(병준ㆍ병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