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유럽 재정위기로 위험 자산 회피 성향이 강해지면서 주춤했던 국제유가가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등 산유국들의 정세 불안 탓에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올해 대내외적 경제여건 악화로 국내 경기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유가까지 치솟는다면 유가가 1%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1% 상승하고 국내총생산(GDP)은 0.04%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에 큰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 사태에 대비해 물가안정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다양한 석유 수입로(路)를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17일 국제금융센터와 한국석유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싱가포르거래소에서 매매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0월4일 배럴당 96.76달러에서 지난 13일 109.84달러로 13.5%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WTI) 현물 종가는 같은 기간에 75.51달러에서 98.70달러로 30.7% 올랐다. 런던국제석유거래소의 브렌트유 현물 종가는 101.17달러에서 110.14달러로 8.9% 상승했다.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등 주요 산유국의 정정불안으로 원유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 5위 원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이란은 2003년 이전부터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 발표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이라크,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등도 정치적·종교적 갈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제2의 중동·북아프리카(MENA) 사태로 국제유가 급등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올해 글로벌 경기 악화로 인해 국내 경제 성장세 둔화가 뚜렷한 상황에서 물가상승률 하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던 유가마저 오른다면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근영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연구 12월호'에 실린 `유가충격이 거시경제변수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유가가 1% 상승하면 약 6분기 동안 소비자물가는 0.104% 오르고, GDP는 0.042%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유가변동의 비선형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유가가 1% 높아지면 소비자물가는 즉각 상승압박을 받아 8분기 후부터 10분기 후까지 0.1%가 오른다고 봤다.
GDP는 감소폭이 급격히 넓어져 5분기 후 0.04%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추산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에너지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부분적으로만 봉쇄해도 단 며칠 만에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 오르고, 보통휘발유 가격도 갤런당 4달러가 넘는 수준으로 즉시 상승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호르무즈해협의 위기와 경제적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전쟁이 1년 이상 장기전 양상을 보이면 국제유가는 브렌트유 기준으로 160~210달러까지 폭등하고 국내 성장률은 2.8%로 떨어지고 물가는 7.1%로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금융센터 역시 주요 원유 생산국들의 정정불안 지속으로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면 국제 유가는 단기 급등이 불가피해지고 경기불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지적이다.국제금융센터 김권식 연구위원은 `국제유가 충격이 경기불황을 심화시키는가' 보고서에서 "1980년 이후 10번의 불황기 가운데 적어도 6번은 국제유가 충격에 영향을 받았다"며 "국제유가 충격은 호황기보다 불황기에 경기를 더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유가 충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경기가 좋지 않은 2012년이 지난해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최성근 선임연구원은 "유가가 지난해 상반기 수준 이상으로 오를 가능성이 커 올해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유 급등은 석유제품을 비롯한 가계소비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정부는 유가급등 사태와 오일쇼크를 대비해 비상대책을 마련하고 에너지 수급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