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고명훈 기자] 검찰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70)씨와 관련 있는 계좌에서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됐다고 밝힌 지 사흘만에 이 자금과 노 씨와의 관련을 부인하는 듯한 언급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큰 것이 많아 수사를 멈출 수가 없고',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가 돌연 말을 바꾼 것을 놓고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
뭉칫돈에 대한 언급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3주기를 앞두고 이뤄진 것을 놓고 이번 조사가 정치적 조사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노 씨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의심스러운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을 하고 있다"고 밝혔던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는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계좌 주인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 자금 관리인이 언론에 거론된 박 모씨라는 사실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뭉칫돈에 대해서는 "뭉칫돈의 흐름을 발견한 적은 있지만, 계좌의 잔고가 있다, 없다고 한 적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심지어 "노 씨와 자금관리인이 돈을 주고 받은 것은 확인된 것 없다"며 "자금관리인의 계좌와 노씨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뭉칫돈의 실제 주인을 확인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노 씨가 계좌 주인'이라는 식으로 발표를 했다가 뒤늦게 '노 씨와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말바꾸기를 한 것.
간담회 말미에 "수사와 관련해 일체 확인해 줄 수 없다. 당분간 간담회도 하지 않겠다"며 "현재 수사의 중요한 고비니 만큼,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문제의 이 계좌를 노 씨와 연관 짓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노 씨 비리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계좌는 맞지만 수사 초기여서 노 씨 관련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고, 뭉칫돈이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거래한 흐름이 있었다고 정리했다.
검찰의 태도가 이 같이 급변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언론에 내용을 흘려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검찰은 노 씨가 실질적인 사주로 보이는 전기설비업체 K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의 땅을 샀다가 되판 후 차액을 횡령한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 계좌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검찰이 이 계좌나 자금의 성격에 대해 노 씨를 상대로 전혀 조사를 한 바가 없다고 하면서도 이 돈이 노 씨와 유관한 것처럼 발표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3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뭉칫돈의 존재를 공표한 것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이나 친노 세력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를 벌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이 "이 계좌는 노 전 대통령이나 가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서 입출금도
정체됐다"고 설명한 점은 노 전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시키려고 한 것이 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노 씨의 변호인인 정재성 변호사는 "지금까지 노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 몇 번인데, 이제 와서 수백억 원대의 뭉칫돈이 발견됐다면 지금까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밖에 안된다"며 "검찰이 정치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계좌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노 씨 자금관리인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박모(57) 씨도 "회사 운영과정의 자연스러운 금전거래"라며 "만약 비자금이 있다면 내 목을 내놓겠다"며 강력하게 부인했으며, 노 씨측도 이 계좌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뭉칫돈의 성격은 검찰이 밝힌 대로 일주일 정도 있으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