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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1호기 비상발전기 고장상태서 '핵연료 인출' 강행… 안전불감증 심각

[재경일보 이영진 기자] 고리원전 1호기 '블랙아웃'(완전정전) 사고 은폐사건을 2개월 동안 수사하고 있는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제1발전소장 문모(55·불구속 기소)씨 등 팀장급 간부들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9일 블랙아웃 사고 당시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난 상태에서 핵연료를 인출하는 위험천만한 행위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 밖에도 고리원전 내부에 총체적이고 뿌리깊은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검찰에 따르면, 원자로에 전원공급이 중단되면 바로 가동돼야하는 1호기 비상디젤발전기는 기동장치인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장으로 인해 정전사고 당시 고장난 상태였다.

운영기술지침서상 비상발전기를 즉시 수리해야 했지만 이들은 고장수리 자료가 남아 정전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것을 우려해 2월13일부터 예정된 정기점검때까지 고장상태를 방치했고, 솔레노이드 밸브도 신품으로 교체해야 하지만 발전소 내 예비품이 없어 정기점검 때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준으로만 정비했다.

이들은 심지어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난 상태에서 블랙아웃 사고 다음날인 지난 2월10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후 10시까지 1호기의 핵연료 인출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장난 비상발전기를 즉시 수리하지 않고 비상발전기 미작동 상태에서 핵연료 인출작업을 진행해 운영기술지침서를 위반한 것이다.

핵연료를 원자로 밖으로 인출할 경우, 핵연료의 잔열이 남아 있어 이송과정에서 계속 냉각을 시켜줘야하기 때문에 외부전원 1개를 기본 전원으로 하고 비상디젤발전기 전원도 필요하다.

문 소장 등 팀장급 간부들은 12분만에 다시 전원을 공급한 직후 주제어실에서 대책을 논의했으며, 상부의 책임추궁과 비난 여론 등을 우려해 정전사고 발생사실을 은폐하기로 공모했다. 법원에 계류중인 고리1호기 운전정지 가처분 사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고려됐다.

또 정전사고 당일 오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 사고 발생시 철저한 책임추궁을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보고 인사상 불이익 등을 두려워해 보고를 은폐한 것으로 확인됐다.

24시간 원전 상태를 감시하는 아톰 케어(ATOM CARE) 시스템도 계획예방정비 기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지정된 담당자에게 관련 정보 문자메시지를 전송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톰 케어 시스템은 모든 원자력발전소 호기별로 원자로 온도, 전력공급상태 등 주요 변수에 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지만 비상시 경보발령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고리원전 본부장과 한수원 본사에 보고했다는 의혹과 관련, 관련자 20여명을 조사하고 통화내역 등을 분석했지만 본부장이나 본사, 원자력안전위 등 감독기관에 정전사고를 보고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고리1호기에서 수집하는 데이터만 267가지이며 당시 정전으로 전원공급이 중단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도 저장돼 있으나, 이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지는 않아 사고 발생 사실을 당시 바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