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로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나날이 악화하는 가운데 100조원 규모의 은행권 가계 빚이 연내 만기도래한다.
빚을 갚지 못해 경매시장에 나오는 아파트가 속출하는 등 불안한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근근이 이자만 갚아온 `한계차주'를 중심으로 가계대출 부실폭탄이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국은 가계부채가 당장 터질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올해 100조 만기도래… 가계 빚 `시한폭탄'
과거에는 가계 빚의 빠른 증가세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질적 취약성이 `태풍의 핵'이다.
당국의 가계부채 대책 등으로 대출 증가세는 안정세를 되찾았지만 대내외 경제악화와 부동산 경기침체 속에서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은 나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5일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308조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5.4%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8년 5월 5.1%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곳곳에 뇌관이 너무 많다.
가계부의 부채상환능력을 보여주는 가계 신용위험지수는 올해 3분기 38까지 치솟으며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가계의 빚 갚을 능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말까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포함해 100조원 규모의 가계 빚이 만기도래한다.
금융위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79조5천억원이다. 신용대출 만기도래액 추정치 18조5천억원을 합하면 올해 만기도래액은 약 98조원에 달한다.
물론 이 대출금을 올해 안에 모두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시상환대출의 경우 만기연장률이 87.4%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만기도래액 가운데 실제로 연내 갚아야 할 금액은 7조5천억원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인 만큼 가계부채 시한폭탄은 계속 돌아가는 셈이다.
◇가계빚 늘려 집은 경매로…借主는 신용불량자로
이미 `눈덩이' 빚 때문에 쓰러지는 가계도 속출하고 있다.
지지옥션의 집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1~6월) 수도권 아파트 경매건수는 1만3천210건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빚을 갚지 못해 집이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5천541건에서 2009년 1만372건으로 두 배가량 뛰어오른 뒤 2010년에는 1만180건, 2011년에는 1만2천465건을 기록했다.
그나마도 감정가의 70%가량의 헐값에 팔리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소재 아파트 매각가율(감정가 대비 낙찰된 금액 비율)은 77.6%로, 카드사태 직후인 2004년 79.8% 이후 처음으로 80%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1~7월 인천(72.8%)과 경기(73.6%) 등 수도권의 아파트 매각가율도 70%대에 머물렀다.
지지옥션 하유정 연구원은 "경매시장에 나오는 아파트들은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해 은행권에서 내놓은 매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 아파트 원소유주는 다중채무자가 많아 은행이 채권 회수를 못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나 신용회복위원회와 같은 구제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캠코가 운영하는 바꿔드림론(저금리 대출 전환) 신청자는 3만983명, 신청금액은 333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8.9%, 68.5% 늘었다.
지난해 1분기 신복위의 개인워크아웃 접수건수는 1만8천838건으로, 전분기 대비 1.5% 증가했다.
KB금융경제연구소 김진성 연구원은 "은행 빚도 어느 수준 이상으로 늘면 카드사태처럼 확산할 수 있다"며 "은행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쪽에서 한계차주가 느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됐고 건전성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져 집값이 폭락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