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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공화국' 되어가는 대한민국의 두 얼굴

[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해 전 세계가 우울함 그 자체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제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도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글로벌 경기 악화로 국내 경기도 동반 부진에 빠져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양극화가 주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심하다.

한국 정부의 재산과 맞먹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그룹의 오너들은 1%도 채 안 되는 지분으로 문어발로 확장한 기업과 한국 경제를 움켜쥔 채 또 하나의 공화국을 다스리고 있다. 이런데다 정부는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고 나름 세계적인 경쟁력까지도 가지고 있는 대기업에 사실상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사실상 재벌공화국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가끔 대기업을 향해 쓴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최근에는 장기화되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겪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현재 가계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을 포함해 1000조를 넘어선 부채에 허덕이며 시한폭탄을 안은 채 '빚에 찌든'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글로벌 경기악화에다 대기업의 횡포와 불법 등에 치여서 많은 중소기업들은 오늘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 영세업종까지 진출한 탓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골목상권은 완전히 초토화됐다. 장터에 앉아서 채 1만원도 제대로 벌지 못하면서도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이지만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이뤄진 그 고속성장의 기적 탓에 기적의 주역들인 베이비붐 전후 세대들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치열한 경쟁에서 완전히 도태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성장으로 인해 커진 파이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양극화를 점점 더 심화시켜 가고 있는 재벌들의 행태에 대해 힘 없고 가난한 자들은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어느새 증오로까지 커져 가는 듯한 분위기다. 근래에 정치권에서까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표를 노리는 정략을 넘어서 있다. 이에 대해 '대기업 죽이기', '재벌 죽이기'라며 불만을 토해내는 것은 대기업과 재벌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에서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에 가입했다며 우리나라가 마치 선진국에 들어선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전보다 더 가난해진 듯한 삶에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고 있다.

◇ 정부 재산과 맞먹는 민간 100대 그룹 자산

최근 재벌닷컴이 발간한 '대한민국 100대그룹'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간 100대 그룹이 정부 재산에 맞먹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업과 민영화 공기업을 제외한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100대 그룹의 2011 회계연도 기준 총자산이 1446조7620억원으로, 기획재정부가 최근 '2011 회계연도 국가재무제표'에서 공개한 우리나라 정부 보유 총자산 1523조2000억원과 비교해 95%에 이른 것.

특히 삼성, 현대차, SK, LG 등 '빅4'의 보유자산 총액이 671조원으로 민간 100대 그룹 전체 자산의 46.4%를 차지하는 등 상위권 그룹의 경제력 집중이 두드러졌다.

또 10대 그룹이 한국거래소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60%까지 육박한 상황이며, 연간 매출액은 GDP의 77%나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수치들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기업이 무너지면 한 나라의 경제가 무너질 정도가 돼버려 정부가 대기업에 특혜를 주지 않으면 큰 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 10대 그룹, 1%도 안 되는 지분율로 기업지배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대기업집단의 주식 소유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10대 그룹 오너의 평균 지분율은 0.94%로 지난 1993년부터 관련 분석을 시작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1%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그룹 오너들의 내부지분율은 전체의 55.7%로 늘어 그룹에 대한 지배권은 오히려 강화됐다. 기업집단 소속 전체 계열회사의 자본금 가운데 동일인과 친족, 계열회사 등 내부자의 지분이 차지하는 비중인 내부지분율이 상승했다는 것은 재벌총수의 경영권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10대 그룹의 오너들이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서도 친족이나 계열사 등의 우호 지분을 끌어모아 기업을 지배하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도 쥐락펴락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기업이 정부의 각종 정책적 특혜, 소비자인 국민과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돌연변이인 '공룡기업'으로 재벌로 성장했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 채 경영권 편법승계, 상속세 탈루, 배임, 하도급 횡포, 영세업종 침투 등 각종 편법과 탈선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총수가 막강한 지배권을 가지고 기업집단 전체 계열사의 경영을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재벌의 중소기업 영역 잠식이나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기업집단의 소유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기업의 구조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 대기업 잘 된다고 배 아픈게 아냐… 대기업 횡포에 공멸할 수도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에서는 유례 없이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으로 잘 나가고 있는 대기업에 대해 시기질투하거나 쓸데 없이 트집을 잡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땀 흘린만큼 대가를 거두는 것은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가진 자가 더 하다'는 말처럼 대기업의 탐욕이 그칠 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지금 가장 기본적인 생명의 존재법칙인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삼키고 삼켜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공룡은 다른 이들도 죽이지만 결국은 자신도 멸종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기업은 문어발 확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영세업종에까지 침투해 국내 시장을 심각할 정도로 잠식하고 있고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계열사 키우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과도한 확장을 막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등 상생과 동반성장에 거의 무관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대기업을 향한 정부와 정치권의 각종 규제와 입법을 막기 위해 로비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긁어모은 부를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식구만 챙기고 경영권 상속을 위해 편법적으로 증여까지하며 많은 이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부의 분배로 인해 일부에게 부가 편중되고 대부분의 가계의 소득이 악화돼 파산에까지 이르게 되면 기업이 만드는 제품을 살 수 있는 고객이 줄어들어 결국 자신들에게 피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치다. 재벌들도 이 같은 상황을 머리로는 알고 있겠지만, 별 세계에서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살다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수가 안 되면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넓어진 해외 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면 된다고 여기는 듯 하다.

미국에는 존경 받는 부자인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있다. 버핏은 최근 정부가 재정적자로 인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하는 등 어려움을 겪자 먼저 자신을 비롯한 부자들에게 증세를 하라고 요구해 화제가 됐었고, 빌 게이츠와 함께 범인들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천문학적인 금액의 재산을 환원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 받는 부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대기업과 재벌 총수들이 진지하게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들이 패가망신하고 나라가 망해도 재벌들은 자신들의 재산만 들고 해외로 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부자요 최대 기업의 총수는 형과 누나와 재산다툼을 벌이면서 정화되지 않고 감정 섞인 수준 이하의 말을 쏟아내 인격의 그릇에 대해 아쉬움을 주기도 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기업, 재벌총수의 실체다.

◇ 1000조원 돌파한 가계 부채… 마땅한 해결책 없어 더 심각

재벌은 점점 더 부자가 되어 가고 있지만, 국민들은 점점 가난해져 가고 있다. 아니 국민 대부분이 빚쟁이 신세고, 파산직전에까지 내몰려 있다. 최근 경기 악화로 인해 신용불량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이고,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될 위기에 처한 가정도 한 둘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가계부채 총액은 911조4000억원이며 자영업자 대출까지 합치면 1천조원이 넘는다. 이는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0조원이나 늘어난 것이고 2007년 665조여 원보다는 40%이나 증가한 수치다. 불과 4~5년 사이에 부채가 2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특히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가계의 은행빚만 1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지금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상태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1년 한국은행의 '가계금융조사' 자료를 보면, 자기 집을 보유한 가구의 평균 가처분소득(저축과 소비를 할 수 있는 소득)은 전년 3373만원보다 9.3% 늘어난 3688만원이었지만, 가계부채는 전년 5629만원보다 12.9% 증가한 6363만원이었다. 집을 소유한 가계의 부채가 가처분 소득보다 1.4배나 더 빠르게 불어났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가처분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166.9%에서 2011년 172.3%로 확대됐고 자택 보유 가구의 월 지급이자와 월 상환액은 48만원에서 60만원으로 25%나 급등했다. 많은 가정들이 돈을 벌어서 입에 풀칠만 하면서 빚을 갚는 것조차도 버거운 상태가 된 것이다.

가계부채는 원래 한국 경제의 고질적 악재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 최근 대한상의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3%보다 8%포인트 높고,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리스(61%)보다도 20%포인트나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구제금융을 신청한 스페인(85%)에도 근접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국치'로 여기며 치를 떠는 IMF 구제금융의 악몽이 또 다시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유럽발 재정위기에 가계부채가 만나면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자의 입에서는 이는 세계대공항 이후 가장 큰 경제적인 충격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국제 신용평가사와 외국계은행, 국제 경제 기구 등이 한국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이 가계부채 문제다. 한은에서도 무수하게 많은 경제지표들 가운데서 가계부채가 가장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1000조원이라는 가계부채의 양적 수치도 가슴을 답답하게 하지만 가계부채가 질적,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데다 뚜렷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금리를 인하할 경우 가계부채를 자극할 수 있어 경기 둔화의 조짐이 뚜렷한 데도 카드를 빼내들지 못하고 있다. 대내외 악재가 동시에 겹치는 바람에 정부로서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다 대외악재까지 겹친다면…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다.

특히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적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가계부채의 3대 취약 계층으로 자영업자, 다중채무자(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사람), 고령자가 꼽히는데, 부동산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데다 경기마저 악화되고 있고 이제 인구의 14.6%를 차지하고 있는 약 712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도 본격화되는 시점이어서 앞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개인신용평가기관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현재 다중채무자가 182만명으로 지난해 3월 말 120만명에 비해 62만명(51%)이나 급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대부업체 이용자까지 포함하면 다중채무자 수는 2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중채무자 연체율도 지난 4월 말 현재 4.15%로 2010년 말의 2.41%에 비해 1.7배나 증가했다. 다중채무자는 금융권에 연쇄타격을 줄 수 있다.

또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부채에서 5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2003년 33.2%에서 2011년 46.4%로 13.2%포인트나 높아졌고, 이들의 부채가 은행보다 비은행권에서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또 2011년 신규 취급 가계 대출에서 연 소득이 30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의 비중이 계속해서 높아진 반면 고소득층의 비중은 낮아졌다고 밝혔다. 가계부채가 저소득층에서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은행권의 대출을 억제한 결과, 이른바 '풍선효과'로 고리의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찾는 이들이 많아져 가계부채 부실의 위험성이 더 커진 상태다. 실제로 올 1분기 2금융권 대출은 404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반면, 시중은행 1금융권 대출비중은 6개월만에 7%포인트나 낮아진 52.8%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현재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용자 250만명이 연 30% 이상의 고금리를 물며 대부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주머니 사정도 넉넉치 않은 저신용자들이 감당해야 할 이자는 더 비싸니 부실화의 가능성이 더 높을 수 밖에 없다. 또 향후 경제가 자발적으로 가계부채를 해소할 능력으로 주로 보는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다른 주요 국가들보다 열악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올해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이 집단대출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고,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도 올라가는 등 이미 조금씩 불안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5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0.97%로 5년 7개월만에 최고치였고,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1%대 초반이었던 주택담보대출의 집단대출의 연체율은 5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1.7%로 높아졌다. 대부업체의 연체율도 8%로 올라 지난 2009년 12월 8.5% 증가 이후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저소득층에 많은 다중채무자 연체율도 4.15%로 상승이 가팔라지고 있다.

이 같이 심각한 상태인 가계부채가 내수를 위축시키는 단계를 넘어 경제성장률까지도 끌어내리고 은행부문의 부실로까지 이어지는 최근 구제금융을 신청한 스페인식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점점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계부채 등으로 인한 가계의 어려움에는 대기업의 책임도 없지 않다. 가계가 부채가 아무리 많아도 그 이상의 소득만 들어온다면 크게 문제될 일이 없다. 문제는 벌이가 시원찮다는 데 있다. 이것에 대한 모든 책임이 대기업의 몫은 아니지만 회피할 수도 없다. 특히 정규직 채용에 적극적이지 않아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일자리 창출에도 소극적이어서 청년 실업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인해 기업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 속에서 대부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고 있지만, 재벌들은 이들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싱크탱크격인 한국경제연구원(원장 최병일)은 최근 '정규직 전환 의무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19대 총선 당시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던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의무화'가 입법되면 퇴직금과 퇴직위로금 등 고용조정 비용이 정규직 근로자의 75%까지 상승해 기업이 되도록 적은 인원을 고용하는 등 노동수요가 위축돼 총 고용자 수가 46만∼48만명 감소하는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치권의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입법화에 대해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이희범)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3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6.1% 오른 시간당 4,860원으로 발표하자 성명을 내고 "어려운 경제상황과 영세·중소기업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고려가 빠진 이번 결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반대하고 나서는 촌극을 보였다. 경총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이 망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선진국인 호주와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각각 1만7천원, 1만4천원 가량으로 우리나라의 3배 이상이다. 이 금액으로는 결혼 준비도 할 수 없고, 결혼했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데다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보다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서 대졸 청년 실업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취업을 위한 '스펙' 경쟁도 심화시켜 관련 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 점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 가계부채의 뇌관은 '주택담보대출'

심각한 수준의 가계부채의 뇌관은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담보대출은 2004년 이후 연평균 10%씩 증가해 현재 약 306조원으로 가계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원금을 갚지 못하고 이자만 내는 대출은 235조원4000억원으로 전체의 76.8%다. 또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이 79조5000억원이며, 올해 중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일시상환 대출은 59조9000억원, 거치기간이 끝나 원금 상환이 시작되는 분할상환 대출은 19조6000억원이다.

주택담보대출은 과거 부동산 거품이 왔을 때마다 크게 늘었다. 집을 사놓으면 언젠가는 집값이 올라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이른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부동산 투기꾼과 그들을 따라 한 몫을 챙겨보려던 '하우스 푸어'들로 하여금 무리하게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도록 했고, 은행도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기업 부도 등을 계기로 안정적인 자산운용처로 등장한 가계대출의 비중을 늘리는 가운데 특히 부실화되어도 담보(집)는 잡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단기이익을 위해 크게 늘렸다. 여기에다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한다며 총 23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등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 쓸데 없는 기대심리만 키웠다.

그러나 이렇게 너도 나도 없이 받을 수만 있다면 일단 받아놓고 봤던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많은 이들이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부동산 거품 붕괴가 너무나 빠르게 온 탓이다. 특히 이자 상환기간이 끝나 원금상환기간이 도래한 가계는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런 가운데 부동산 가치가 워낙 떨어진 탓에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고, 결국 대출금 이자도 갚지 못해 자신의 집을 경매에 내놓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분양업자는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겠다고 고해성사를 할 정도로 현재 부동산 시장의 상황은 심각하다. 그는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이들에게 "호가는 필요없다. 매도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던지라"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이 끝없이 추락할 것이니 본전 생각할 것 없이 지금이라도 처분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실제로 싸늘하게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는 정부의 여러 차례의 대책에도 꿈쩍하지 않고 계속해서 곤두박질치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부동산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 전역에 걸쳐 지난 2008년 이후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출 이자를 제대로 내지 못한 이들이 늘어나 지난 5월 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85%로 지난 2006년 10월 이후 가장 높아졌다. 경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연체율 상승에 대해 지난 2006~2007년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 3~5년 거치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산 하우스 푸어들이 원금 상환 시기가 돌아오면서 채무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경쟁을 벌이면서 일정 기간은 이자만 갚다가 한꺼번에 원금을 상환하는 일시 상환형 대출을 무분별하게 판매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은행권도 책임을 면키 어려운 부분이다.

부실화된 주택담보대출로 인해 경매매물로 넘어간 주택도 부지기수다. 법원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지난 5월 수도권에서 경매에 나온 아파트는 모두 2842건으로 월간 기준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202건)보다 29% 늘어난 수준이다. 단독주택 등을 포함한 전체 경매물건 수도 지난달 올 들어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섰다. 부의 상징인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많은 이들이 본전은커녕 소위 '쪽박'을 차게 됐다. 문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마땅한 부동산 경기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백약이 무효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 당국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건설사들은 뻥튀기한 비싼 분양가로 이미 현금을 두둑히 챙긴 상태다.

◇ 자영업자 몰락… 자영업자 죽이고 또 죽이는 대기업

자영업자들의 상황도 심각하다. 주택담보대출의 상당부분은 자영업자의 생활자금이다. 이들은 대부분 퇴직 후 생계 유지를 위해, 특히 창업을 위해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과다경쟁과 낮은 수익률로 인해 대출이자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164조8000억원이다. 또 같은 기간 자영업자대출 연체율은 1.17%로 지난해 말보다 0.37%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가계금융조사'를 보면, 자영업자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3457만원이었지만 평균 부채는 가처분소득의 두 배에 육박하는 6896만원이었다.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빚이 두 배 이상 많은 것이다. 임금노동자의 1.1배와도 큰 차이가 나는데, 이는 퇴직자가 자영업자가 되는 순간 퇴직금에다 빚을 내 사업을 시작하지만 소득수준이 더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심히 돈을 벌어도 빚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대기업들이 골목상권에까지 침투하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고사상태에 빠졌다.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이런 저런 이유로 기업에서 퇴직한 이들이다. 대기업에 대해 해고당해 쫓겨난 아픔을 한 번 이상 가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 1997년 외환위기로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단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해 퇴직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자영업자들이 급증하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대형 유통업체나 프랜차이즈업계 등에 상권을 빼앗기고 있다. 슈퍼마켓은 편의점, 동네빵집은 재벌가나 프랜차이즈업계의 빵집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있고, 백화점,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으로 인해 전통시장도 죽어가고 있다. 여기에다 대기업들은 이 같은 업종에 진출한 계열사에 각종 특혜를 주며 손님을 빼가고 있다. 최근 자영업자들이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문제 삼으면서 집단 행동에 나섰었는데, 이는 대기업 카드사들이 계열사나 대기업 등에 각종 수수료 혜택을 준 것이 발단이 됐다. 결국 이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자영업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거나 프랜차이즈점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프랜차이즈점주가 되면 본사의 횡포에도 시달려야 한다. 대기업이 사실상 자영업자들을 죽이고 또 죽이고 있는 셈이다.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악전투구하고 있지만 IMF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내실을 다진 대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을만큼의 탄탄한 경쟁력을 쌓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어려울 때마다 구조조정을 단행, 기업을 지켜가고 있지만 반대급부로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게 하고 있고 결국 자영업 부문을 과다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리고 나서는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하면서 골목상권까지 침투해 자영업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비정상적으로 자영업자가 많은 상태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자영업자 현황 및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자영업자 비중이 15.8%인 반면 우리나라는 두 배에 달하는 31.3%였고, 우리나라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나라는 관광산업의 비중이 큰 터키(39.0%), 그리스(35.1%), 멕시코(33.9%) 등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업국가 중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일본은 자영업자 비중이 1990년 22.3%에서 2008년에는 13.0%까지 떨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대비 자영업자 비중도 미국의 3.8배, 일본의 2.5배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같은 업종 내, 그리고 영세업종에 진출한 대기업과의 과다경쟁이 가격인하 경쟁, 원가 줄이기 경쟁 등으로 이어지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수익성을 더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원재료 가격이 오르거나 경제위기가 오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수익이 더 악화되고, 경제위기가 오면 고객들이 지갑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자영업자들은 이 같은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겹쳐서 어려움이 극에 달한 상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최근 자영업 노동시장 특성 및 자영자 가구소득 실태'를 보면, 자영업자 가구의 상대빈곤율은 1990년 6.3%에서 지난해 8.4%로 증가했고, 이 기간 적자가구 비중은 10.4%에서 19.7%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또 소상공인진흥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월평균 순이익은 149만원에 불과했다. 특히 30.8%는 월평균 순이익이 100만원 이하였고, 적자를 보거나 아예 수입이 없는 자영업자는 무려 26.8%에 달했다.

결국 직장에서 밀려난 후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자영업을 선택했지만 더 치열하게 이뤄지는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에서마저 많은 이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들은 결국 빚더미에 앉은 빈곤층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음식업중앙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5만6192개 업소가 신규 개업을 했지만 29만8758개는 휴·폐업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2만8098개가 문을 열었지만 15만3787개 음식점이 휴·폐업한 것이다. 생계를 위해 한 명이 음식점을 개업하는 순간, 5곳 이상이 문을 닫는 것이다. 자영업에서마저 밀려난 이들은 이제 무엇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 재벌들 혼자 호의호식할 때 아니다

대기업은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재벌죽이기'에 나섰다며 아우성이다. 그러나 사실 대기업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좀 심하게 말하자면, 대기업은 서민을 죽였고 죽이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을 죽였고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차고 넘치는 돈에도 불구하고 더 큰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탐욕'으로, 그리고 죽을 때까지 먹고 살아도 충분한 부를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속 문제로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자식들을 달래고 먹고 살 회사를 하나 차려주려는 의도로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시키고 있지만,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은 그것이 아니면 안 되는 생계가 달린, 목숨이 달린 일을 하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한 상당수의 업종은 힘 없는 이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까지 해야 할 절실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와 맞먹는 돈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는 대기업이 정치권의 각종 규제에 대해 곧 죽을 것처럼 거품을 무는 모습은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이 보기에는 좀 심하게 말하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뿐이다. 대기업이 그러한 규제를 받아도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과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도 못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가계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위험 수위에 달했다.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와 과다경쟁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면, 결국은 대기업도 타격을 받게 된다. 대기업은 지금부터라도 동반성장,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수치를 보고도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대외악재보다 더한 내부 문제로 위기에 봉착하게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