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증권사들이 양도성예금증서(CD) 거래가 거의 없는데도 금융투자협회에 유통금리를 보고해 사실상 금리조작이라는 지적이 높다.
CD시장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보니 뚜렷하게 참고할 자료가 없는 증권사들이 금리를 만들어낸 것.
특히 CD 거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과거 기록을 그대로 보고하거나 거래가 이뤄진 다른 증권사 수치를 참고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결국 CD 금리와 현실 금리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금투협에 CD금리를 보고하는 A증권사 관계자는 19일 "상반기 통틀어 CD금리 거래가 있었던 날이 5일 미만"이라며 "거래량이 무의미할 정도로 적은 상황에서 금리를 입력해야 하니 과거 수치를 입력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상반기 금리 통보 대상이었으나 하반기에 빠진 B증권사 관계자도 "올해 상반기 CD거래를 한 실적이 전혀 없어 전일 종가를 기준으로 금리를 입력했다"고 토로했다. 당일 거래가 없으면 전일 종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 그러나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전일 종가를 따르다 보니 결국 수개월 전 CD 금리를 따르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상반기 CD발행 실적이 전무한 C증권사 관계자도 "상황이 그렇다보니 같은 금리를 계속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거래량이 워낙 적다 보니 CD 2개월물, 4개월물 등의 주변물 금리를 참고해 비슷하게 맞추는 증권사도 있었다.
D증권사 관계자는 "3개월물 거래가 워낙 없어서 2개월이나 4개월물 금리에 변동이 있으면 이를 감안해 3개월물 금리에 맞춰 금투협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만기는 다르지만 3개월 물 거래가 거의 없어서 다른 CD 금리로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때로는 거래가 있는 다른 증권사에 물어보기도 한다. 거래가 잘 되어도 담합을 할 수도 있지만, 워낙 거래가 없다보니 구조 자체가 담합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금투협은 매일 오전, 오후 한 차례씩 10개 증권사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CD금리를 보고받아 최고, 최저 금리 2개를 제외한 8개 수치를 평균해 고시금리를 결정한다.
CD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도 10개 증권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매일 금융투자협회에 당일 CD 금리를 보고한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 주관에 따른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금리가 결정된다.
대부분 증권사의 CD 금리 보고 업무를 낮은 연차 직원 한 사람이 전담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CD 금리 보고는 부수적인 업무다. 입력은 막내가 한다"라고 말했다.
◆ 금융당국은 뭐하나
사정이 이런데도 CD 금리 보고에 대한 별도 기준이나 지침은 없었다.
증권사들은 거래 부족으로 CD금리의 왜곡 가능성을 지적했지만 금융투자협회와 금융감독원이 마땅한 개선책을 제시하지 않아 현 상황에 이르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증권사 채권 담당자는 "마지막으로 CD 3개월물이 발행된 것이 4개월 전"이라며 "금투협과 금감원에 CD금리 왜곡이 있으니 어떻게 입력해야 하느냐고 문의했지만 별도의 지침이 없어 전날 금리를 계속 입력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CD 발행이 줄어들어 보고기준이 없어졌다. 금투협과 금감원에 CD금리 왜곡에 대해 문의를 했지만 대안을 제시받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거래량이 무의미할 정도로 적은 데도 증권사들이 대표성을 띄지 못하는 금리를 무리하게 입력하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제출 기준을 규정으로 정해놓은 것은 없다. 통상 CD뿐만 아니라 다른 채권금리도 거래가 없으면 호가로 정하고 호가조차 없으면 주변물 금리나 전날 금리를 참고해서 정한다"며 유동성 부족을 탓했다.
◆ CD시장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현재 CD 시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CD 거래량은 2008년 이후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해왔다.
2008년 224조2737억원에 달했던 CD 거래대금은 2009년 150조8923억원, 2010년 75조846억원, 2011년 53조6840억원으로 눈에 띄게 급감했다.
올해 들어서는 거래가 더 줄었다.
상반기 총 거래대금은 13조3천36억원으로 집계돼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거래대금이 30조원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
올해 상반기 월평균 거래대금은 2조2189억원이었다.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한 달 동안 CD 거래대금이 10억원 미만인 증권사도 다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 상반기를 통틀어 CD를 거래한 날이 5일 미만이다. 6개월 동안 거래한 금액을 다 합쳐봤자 1천억원이 안 된다"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 직원은 "종일 거래가 단 1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CD 거래가 이처럼 감소한 것은 CD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시중은행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의 방침에 따라 시중은행은 예금 대비 대출 비율(예대율)을 내년 말까지 100% 이하로 낮춰야 한다. 예대율을 계산할 때 예금으로 간주되지 않는 CD를 시중은행이 발행하기 꺼리는 이유다.
올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시중은행의 은행 계정상 CD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전체 자금조달액의 1.7%에 그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CD 발행과 거래가 빠르게 감소하는데도 CD금리에 연동한 대출 비중은 아직 높은 수준"이라며 "CD금리가 다른 시중금리의 움직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적정성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증권사, CD금리 새로운 대체제 필요
증권사들은 CD금리가 대표성을 잃은 만큼 시장의 실질 금리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 지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D 91일물 금리는 가계대출과 중소기업대출 중 절반이 넘는 곳이 기준금리로 사용하며 이와 연동해 이자가 결정되므로 대출금리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CD금리가 단기 지표로서 상징성을 잃은 만큼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CD금리가 실질적인 단기 금리를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대체할 새로운 지수가 필요하다. 코픽스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주문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모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에서 CD금리가 대표성을 띄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CD금리가 대표성을 띄도록 만드는 방향과 대표성을 띄는 다른 지표를 사용하는 방향 둘 중의 하나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실질 금리를 반영하려면 시장에서 많이 거래되는 것을 해야 한다. 은행채 3개월짜리는 CD보다 많이 거래되며 통화채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오후 단기지표금리 제도개선 합동TF 회의를 열어 ▲CD금리를 대체할 단기지표금리 개발 ▲CD 발행ㆍ유통 활성화 방안 ▲CD금리 산정방식의 투명성ㆍ대표성 제고방안 등을 논의한다.
태스크포스(TF)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실무 책임자와 학계 전문가, 연구원 등이 포함됐고 금투협, 은행연합회 등은 업계 의견 전달을 위해 옵저버 형식으로 참여한다.
금융당국은 실제로 코픽스(COFIXㆍ은행자금조달지수), 코리보(은행간 단기 대차 금리), 3개월물 은행채, 3개월물 통화안정증권 등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