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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양심실종' 고액체납자 숨겨둔 세금 8633억 찾아내 징수

[재경일보 이영진 기자] 상장사 대표인 A씨는 경영권과 보유 주식을 팔아 수백억원을 챙기고도 본인 명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파산신청을 했다.

회사 매각대금은 A씨, 임직원, 임직원의 처·자녀, A씨의 장모 등 73차례에 걸쳐 치밀하게 자금세탁한 뒤 부인에게 넘어갔으며, 부인은 이 돈으로 60평짜리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고 10여 개의 수익증권과 가상계좌를 개설해 돈을 굴렸다.

그래도 국세청의 추적이 불안했던 A씨와 부인은 계좌에 든 돈을 며칠 이용하고 해지하는 방식으로 추가 자금세탁을 하고 차명계좌에서 차명계좌로 이체하면서 다른 사람 이름을 이용했다.

덕분에 A씨는 틈만 나면 외국 골프여행을 다니며 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국세청은 임직원을 설득해 A씨의 재산을 추적, A씨 아내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아내 명의 주택을 가압류해 8억 원의 조세채권을 확보했다.

중견건설업체 사주인 B씨는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이 악화해 법인세 등 밀린 세금이 320억 원에 달했다. 결국 회사가 망했지만 호가가 수백억 원인 부동산을 지방에 미등기한 채 숨겨뒀다.

또 사전 증여와 일감 몰아주기 방법으로 부인과 자녀에게 대형 빌딩과 골프장을 넘겨준 뒤 국세청과 검찰의 추적을 받자 외국 휴양지로 도피해 장기체류 중이다.

국세청은 B씨의 미등기 부동산을 찾아내 공매처분해 체납액 전액을 현금 징수했다.

수출법인 대표인 C씨는 허위수출에 의한 부정환급 추징세액을 수백억 원 체납했다.

세무조사에 따른 '세금 폭탄'이 예상되자 일찌감치 본인 소유의 수십억 원짜리 건물을 부인에게 증여하고 자신의 재산은 금융기관에 근저당을 설정해 대출을 받아놓은 덕분에 C씨 명의의 국내 재산은 없었지만 C씨는 강남에 아내 이름으로 된 6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연간 20회 이상 미국, 일본 등으로 골프 관광을 다니면서 유력인사 행세를 했다.

국세청은 C씨의 배우자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71억 원의 조세채권을 확보했다.

중견기업 회장 D씨는 부동산을 양도하고 60억 원을 체납했지만 미국 뉴욕에 수십억 원짜리 초호화 콘도미니엄을 보유하고 회사 명의의 고급승용차를 이용했다. D씨는 국세청이 외국 부동산의 소유사실을 확인하고 압박하자 밀린 세금을 내기로 약속했다.

국세청이 밝힌 사례 중에는 부동산 투기로 번 돈의 세금을 허위매매계약서를 만들어 세금을 탈루하고 세무조사 통지를 받자 수십억 원의 금융재산을 현금으로 숨긴 지방 모 병원 이사의 부인도 있었다.

국세청은 이처럼 올해 1~7월 재산도피 행각을 벌인 고액체납자 1420명으로부터 8633억 원의 체납세금을 징수·확보했다고 12일 발표했다.

이 중 5103억 원을 현금징수하고 2244억 원 상당의 재산을 압류했다. 사해행위 취소소송 등으로 1천286억 원의 조세채권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체납처분을 고의로 회피한 체납자와 이를 방조한 친·인척 등 62명은 체납처분면탈범으로 고발했다.

이들은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세금을 체납하고도 배우자 등 친인척 명의로 재산을 숨겨놓거나 강남 호화주택에서 외제차를 굴리고, 외국에 호화 주택이나 콘도미니엄을 사 수십 차례 외국 골프여행을 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지난 2월 체납정리 업무를 전담하는 '숨긴재산 무한추적팀'을 출범해 고액체납자의 숨겨놓은 재산을 추적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또 날로 지능화되는 체납처분 회피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체납자와 가족의 소득변동, 소비지출, 부동산 권리관계자료 등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체납자의 재산은닉혐의를 분석하는 '은닉재산 추적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특히 외국에 재산을 숨겨두고 외국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호화생활을 하는 체납자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전담요원으로 구성된 '역외체납추적전담반'을 운용했다.

국세청은 외국에 재산을 보유한 체납자의 징세를 위해 최근 발효된 다자간 조세행정공조협약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사업장 수색 등 현장 중심의 체납액 징수활동도 펴기로 했다.

김연근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일부 고액체납자의 사례를 보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특히 출입국기록이 빈번하거나 국외송금 과다자 등 외국에 재산을 숨겨둔 체납자를 중점관리 대상자로 선정해 추적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부과된 세금은 반드시 납부해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국내재산과 소비실태 확인 외에 국외에 숨긴 재산 추적조사를 확대해 호화생활 체납자의 세금을 끝까지 징수하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