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안진석 기자]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 중반으로 크게 낮췄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기존 3%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번 KDI의 2%대 전망으로 사실상 2%대 성장이 기정사실화됐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이미 2% 성장을 예고했으며,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한 단계 올린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올해 성장률 전망을 2.5%로 내놨다. 일부 외국계 투자은행(IB)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1%대까지 전망하고 있다.
KDI는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4%에서 3%대 중반으로 큰 폭으로 내려 저성장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은 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게 좋고 내년 재정정책은 경기 회복을 위해 소폭 확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건도 마련도니 것으로 판단했다.
KDI는 17일 경제전망 수정치 발표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성장률) 전망치를 종전(5월20일) 3.6%에서 2.5%로 1.1%포인트나 크게 낮췄다.
3~4분기에는 전기 대비 각각 0.5%, 0.8% 성장할 것으로 봤다.
내년 성장률 역시 종전 4.1%에서 3.4%로 0.7%포인트나 내렸다.
KDI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크게 하향 조정한 것은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예상보다 크게 낮아져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인 수출의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내수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KDI는 우선 세계경제에 대한 평가를 지난 5월 발표 때 '올해는 성장세가 다소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나 내년엔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했다가 이번에 '올해는 성장세가 상당폭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나 내년엔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올해와 내년 전망에 모두 부정적 색채를 더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의 성장률을 3.5%, 4.1%로 제시했으나 지난 7월에는 2.0%, 2.3%로 수정 전망치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 역시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비롯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로 수출과 내수 모두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면서 성장률이 2.5%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전망은 두바이유 기준 연평균 국제유가를 올해 105달러, 내년 95달러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이뤄졌다. 또 실질실효환율로 평가한 연평균 원화가치가 올해 3% 안팎 하락하고 내년에 5% 내외에서 상승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번 KDI의 전망에서 4개월 전과 비교하면 내수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달라졌다. 당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전년과 유사한 3.6%로 제시하면서 그 이유로 '고용개선과 교역조건 안정을 바탕으로 한 내수 증가세'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종전보다 1.1%포인트 낮추면서 내수 증가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봤다.
민간소비는 올해 1.9%, 내년에는 3.4%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는 종전 전망치보다 각각 0.8%포인트, 0.6%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설비투자는 올해 2.9% 증가에 그치지만, 내년에는 5.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투자는 작년(-5.0%)에 이어 올해 0.2% 줄고 내년에 2.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종전에는 극심한 부진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봤었지만 이번에는 올해 부진이 지속될 것이라고 견해를 바꿨다.
우리나라의 수출 역시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은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동력이지만 유로존 경기침체로 중국 경제까지 타격을 입어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상품 수출(물량기준) 증가율은 올해 2.7%로 둔화하고 내년 8.5%로 올라서며, 수입은 각각 1.8%, 7.7%의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상품 수출 전망치는 종전치보다 올해 4.4%포인트, 내년 2.2%포인트 하향했다.
경상수지 흑자액은 올해 320억 달러, 내년 290억 달러로 종전보다 대폭 높였다.
소비자물가와 실업률 전망은 4개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와 내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 2.4%로, 실업률은 3.4%, 3.3%로 봤다.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은 기존 2.6%에서 2.1%로 0.5%포인트 더 내렸지만 전망에 대한 설명은 바꾸지 않았고, 실업률은 3.4%로 그대로 유지했다.
내년에 우리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면서도 전망치를 기존 4.1%에서 3.4%로 하향 조정했다.
민간소비는 올해 1.9%에서 내년엔 3.4%, 설비투자는 2.9%에서 5.5%로 각각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다.
상품수출은 내년 세계경제의 성장세 회복과 더불어 8.5%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상수지는 올해 320억 달러 내외의 흑자를 낸 후 내년엔 원화가치가 상승해 흑자규모가 290억 달러 내외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KDI는 유로존 위기 장기화, 중동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 등의 가능성을 우리 경제의 하방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미국의 재정절벽(fiscal cliff)을 하방 위험 요인으로 새롭게 추가했다. 재정절벽이란 재정 적자를 줄이고자 그동안 경기 회복을 위해 늘렸던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이는 것을 말한다.
KDI는 미국의 재정절벽과 관련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될 경우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성장세 회복에도 부정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KDI는 경제전망을 지난 5월보다 어둡게 내놓으면서 정책권고의 방향도 틀었다.
당시 KDI는 재정정책은 재정건전성 강화에 초점을 뒀으며 통화정책은 금리를 당분간 현 수준에서 유지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넉달 만에 재정정책은 `소폭 확장', 통화정책은 `완화기조 유지'라는 조합으로 바꿨다. 이런 정책조합은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기둔화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견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KDI는 재정정책과 관련 "당분간 불확실성이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하되 내년에는 국가재정운용계획상의 기조보다 소폭 확장적으로 운용해 경기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하반기 2차례에 걸쳐 마련한 13조 1천억 원 규모의 재정확대 조치를 적절한 것으로 평가하고 올해 추경 편성에 반대하는 정부의 편을 들면서 내년 예산안에 정책역량을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KDI는 구체적으로 "내년에는 중기계획상의 지출증가율(5.1%)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기 둔화에 따른 수입감소를 용인하는 수준으로 설정해 경기둔화를 완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균형재정 달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통화정책 방향은 비교적 큰 각도를 틀어 금리 인하를 직접적으로 주문했다.
KDI는 "최근 경기둔화에 주로 기인해 물가상승 압력이 현저히 완화되는 가운데 앞으로도 낮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되므로 추가 금리 인하의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경기둔화와 부동산시장 침체로 금리를 내려도 가계대출 수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금리 인하에 따른 가계부채 확대 문제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아울러 7월 이후 장기금리 하락으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해 앞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음을 제시하면서 단기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고령화와 경제 성숙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대외여건이 상당 기간 악화하면 낮은 성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며 저성장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경기 둔화가 지속하면 재정과 통화정책을 통한 적극적인 경기 안정화로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하락 상황에서 기존 성장세를 기준으로 단기적 경기안정에 중점을 둔다면 부양책 반복으로 재정과 물가 안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성장 환경의 장기화에 대비한 보수적인 거시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