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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대박' 유혹에 빠진 증권사 임직원들, 법 위반하고 은밀한 차명 주식거래

[재경일보 양준식 기자] 증권사와 증권 유관기관 임직원들이 금융실명제법과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고 차명계좌를 통한 은밀한 주식거래를 하고 있어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증권사와 유관기관 임직원들은 고급정보 접근성 때문에 내부통제규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규제를 받지만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적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부 조사가 들어올 때까지 증권사들은 직원들의 부정행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급정보로 `한탕', `대박'이 가능하다는 유혹에도 쉽게 빠져 선물·옵션까지 몰래 거래하다 적발되고 있어 금융당국의 더욱 철저한 관리감독은 물론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에 따르면,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한국증권금융, 동부증권, IBK투자증권, 예탁결제원 등 증권사와 유관기관 전·현직 직원들이 규정을 어기고 몰래 주식이나 선물·옵션거래를 하다가 적발돼 올해 들어 제재를 받았다.

삼성증권의 한 지점 과장은 2009년 9월~2010년 2월 다른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하고 4억4000만원을 투자해 주식거래를 하다가 금감원에 적발돼 37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이 직원은 금감원 조사가 들어오는 걸 알고 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밀한 거래는 주로 차명계좌를 통해 이뤄진다.

우리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차명계좌로 작년 7월까지 30개월 넘게 선물·옵션을 매매하다가 적발됐고 동부증권의 한 전직 직원도 차명계좌로 2억4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해 거래하다가 결국 들통이 났다.

증권 관련 정보를 접하는 유관기관 임직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증권금융의 한 중간 간부는 5년 넘게 친인척 명의 7개 계좌를 이용해 주식 55개 종목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예탁결제원 직원들도 차명계좌로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했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현재 증권사와 유관기관들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임직원의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제한하는 내부통제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 직원의 경우 자기 회사에 본인 명의로 한 개의 계좌를 만들어 주식 등을 거래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분기마다 내부 준법감시인에게 매매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 외 구체적인 사항은 각 증권사가 내부통제규정으로 규정한다.

금융투자업계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은 일반 투자자보다 고급정보에 접근할 가능성이 커 유혹에 빠지기 쉬운 만큼 증권거래법 시절에는 주식거래가 전면 금지됐다.

그러다가 2009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자기 명의로 증권사 1곳을 선택해 하나의 계좌로 매매하고 분기마다 내부에 보고하는 선에서 허용됐다. 그 대신 행정조치로 끝나던 처벌이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로 강화됐다.

구체적인 제한 사항은 각 회사가 내부통제규정을 통해 정하도록 해 상당수 증권사는 리서치센터나 투자·영업 관련 부서 직원의 주식거래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또 투기 위험성이 큰 선물·옵션거래, 신용·미수거래, 주식워런트증권(ELW) 거래, 거래소가 지정한 투자경고·위험종목 거래 등을 금지하고, 주식 거래가 허용되더라도 투자금액과 매매횟수 등을 제한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선물·옵션, 주식워런트증권(ELW), 신용·미수거래 등을 금지하고 한국투자증권은 연간 투자한도를 직위별로 4000만원~1억2000만원으로 규제한다.

우리투자증권은 주식회전율(상장주식수에 대한 거래량의 비율)이 월별로 150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월 주문횟수도 500건으로 제한했다. 현대증권도 월 회전율이 1500%를 초과할 수 없다.

증권사들이 자체 제한규정을 두는 것은 업무 특성상 중요하고 민감한 투자정보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오해나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미리 차단하자는 게 그 목적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내부규정으로 투자금액을 연봉의 50%로 제한하고 매매횟수를 분기별로 10차례 이내로 한정했다. 선물·옵션거래는 금지된다. 금융투자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분기 보고 외에 별도로 1년에 3~4차례씩 점검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에도 차명계좌를 통해 비밀리에 금융투자상품을 거래하는 등 은밀한 주식거래를 하다 적발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적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공시정보 접근 권한이 있는 거래소 직원이 증권사 임원과 공모해 문제를 일으킨 것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거래소는 임직원의 주식거래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쇄신책을 내놨지만 직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론도 있다. 법으로 허용된 것을 내부규정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고급정보가 집중되는 금융위원회 직원에 대해 규제가 허술한 것도 문제점으로 보인다. 특히 자본시장의 모든 정책과 규제를 담당하는 자본시장국 직원조차 규제 상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4급 이상 직원은 공직자재산공개에 따라 가족까지 재산이 공개되니 통제가 되는데 5급 이하는 자본시장법상 규제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며 "지금처럼 그대로 둘지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더욱 철저히 감시하고 처벌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권사 직원이 다른 증권사에 차명계좌를 열고 몰래 주식거래를 해도 내부적으로 솔직히 보고하지 않는 한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규정이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이나 감사원 적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부 조사가 시작될 때까지 증권사들은 자기 직원이 몰래 수백 차례의 주식거래를 했는데도 아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균 책임연구원은 "금융권 직원들의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 통제장치가 충분히 발달돼 있는 것 같지 않다"며 "금융권 임직원들에 대한 도덕성 규율은 강화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한기 국장은 "거래를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측면이 있지만 최근 각종 비리, 부정행위가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금융당국 감시가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다"며 관리감독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감원은 증권사 임직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주식거래 등은 계속 관리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 직원이 다른 증권사 계좌로 몰래 주식거래를 하더라도 매매주문 기록이 남고 특정 IP가 나오기 때문에 결국 적발된다"며 "증권사 직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부정 주식거래는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규제, 감독보다는 시장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위원은 "자꾸 규제만 늘리고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으면 규제에 대한 불신을 느낄 수 있다"며 "강력한 처벌로 다시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