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오진희 기자] 장기 침체 여파에 식료품 물가의 가파른 상승으로 인해 올해 상반기 가계소비에서 식료품비의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지수'가 2000년 이후 11년여 만에 가장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엥겔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가계의 생활형편이 악화된다는 의미로, 후진국에 가까울수록 이 지수가 커진다.
20일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계의 명목 소비지출(계절조정 기준)은 323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늘었고, 같은 기간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지출은 44조원으로 6.3% 증가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엥겔지수는 13.6%로, 2000년 하반기 14.0% 이후 가장 높았다.
가계의 엥겔지수는 1970~1980년대 30~40%를 넘나들다가 생활형편이 나아진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20% 아래로 낮아졌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 오름세로 돌아서 2008년 상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4년6개월 동안 연속해서 치솟았다.
이 같은 엥겔지수 악화는 식료품 물가의 가파른 상승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가계의 명목 식료품 지출은 2008년 상반기에 비해 33.3%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물가 등 가격변동 요인을 뺀 `실질' 식료품 지출은 겨우 5.7% 느는데 그쳤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경기 측면에서 불황 여파가 가장 크다"며 "특히 국제곡물가 상승으로 농산물가격이 크게 오르며 체감 경기가 악화했다"고 분석했다.
또 식료품을 제외한 가계의 지출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류·담배 지출이 명목 가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2분기 2.13%로 통계치가 존재하는 1970년 이래 최저로 떨어졌다.
의류·신발 지출(5.1%)도 2007년 4분기(5.5%)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금융위기 당시 7%대 후반(7.7%·2008년4분기)을 기록했던 가계의 교육비 지출 역시 올해 2분기 6.6%로 내려앉았다.
음식·숙박 지출(8.3%)은 2000년대 초반 수준을 이어갔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수석연구위원은 "가계 소득이 회복하고 있음에도 기호식품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은 줄이고 있다. 이는 살기 팍팍해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