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오진희 기자]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에 그치며 역대 두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안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수요 압력이 약화된 데다 작년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던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제품의 상승세가 올해 들어 꺾인 것인 탓이다.
여기에다 반값 등록금과 무상보육 등 정부의 정책효과로 서비스 물가가 하락한 것도 물가 안정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대선 후 임기 말에 가공식품과 서비스 요금 중심으로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내년 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내놓은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가 연평균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2.2% 올랐다.
이는 전국 단위로 물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난 1965년 이래 1999년(0.8%)에 이어 두번째로 낮은 상승률이다.
작년 물가 급등세를 이끌었던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제품의 상승세가 올해 둔화된 덕분이다.
또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1.6%로, 역시 역대 두번째로 낮았다.
농축수산물은 작년 9.2% 급등했지만 올해는 축산물이 올해 가격이 하향 안정된 영향으로 3.1% 올랐다. 특히 구제역 여파로 작년에 10.3%나 급등했던 축산물 가격은 올해는 오히려 7.4% 하락했다.
수산물도 지난해 8.5%에서 올해 2.6%로 상승세가 둔화됐다.
농산물은 올해 잇따른 태풍과 폭염ㆍ폭설 등 기상 이변의 영향으로 올해 8.7% 올라 작년(8.8%)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작년에 13.6%로 폭등세를 보였던 석유류의 물가 상승률도 올해는 3.7%로 낮아졌다.
그러나 올해 물가가 안정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지난해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른 기저효과가 다분히 작용해 체감 물가와는 괴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는 작년에 상승세를 주도했던 부문들의 올해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이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물가 부담은 크다는 뜻이다.
서비스 부문의 물가가 안정된 것도 올해 물가 안정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공공서비스와 개인서비스가 각각 0.5%, 1.1%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개인서비스는 무상보육ㆍ무상급식 등 정부 정책으로 인해 보육시설 이용료(-27.9%), 학교급식비(-18.3%), 유치원비(-8.8%) 등이 작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통계청은 보육정책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가 0.34%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공공서비스에선 반값 등록금과 통신료 인하 압박 등의 영향으로 이동통신료(-4.8%)와 국공립대 등록금(-6.8%), 고등학교 등록금(-3.3%) 등이 하락하며 물가 안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집값은 올라 서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전세(5.0%)와 월세(2.8%)가 작년(4.6%, 2.6%)보다 더 올랐다. 또 도시가스(7.7%), 전기료(2.1%), 지역난방비(13.4%) 등 공공요금 오르면서 서민 생계에 어려움을 더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물가 여건이 올해보다 좋지 않아 물가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월 신선식품지수가 폭설과 한파로 9.4% 급등한 가운데 1월도 강추위가 예보돼 `밥상물가'는 고공행진이 우려된다.
또 대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민생활과 밀접한 가공식품과 공공요금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두부, 콩나물, 조미료 등 가공식품과 소주, 밀가루 등의 가격이 올랐고 도시가스 도매요금, 광역상수도 요금, 민자고속도로 통행료, 택시 요금 등이 인상 계획을 확정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내년 물가 여건을 보면 경기 악화로 수요 측면에서는 인상압력이 약하겠지만 공급 측면은 불안하다.
국제유가와 국제곡물가격은 최근 상승세가 둔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중동 정세불안과 기상이변 등에 따라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국내 물가도 끌어올릴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가공식품은 하반기 국제곡물가격 상승 영향으로 이미 인상이 시작됐다.
주요 곡물가격을 보면 옥수수는 연초 부셸 당 659센트였으나 11월에 740센트로 12% 올랐고 같은 기간 밀과 콩은 각각 31.6%, 18% 뛰었다.
국제곡물가가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의 시차를 보면 밀은 5~6개월 뒤 국내 밀가루 가격에, 콩ㆍ옥수수는 4~7개월 뒤 국내 사료가격 인상에 반영됐다. 이는 다시 라면과 빵 등 가공식품과 자장면, 돼지고기, 쇠고기 등 축산물 가격에 파급된다.
개인서비스요금도 원재료비가 오르면서 외식비를 중심으로 올라갈 여지가 크다.
내년 소비자물가 전망은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2.7%로 올해(2.2%)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안형준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무상보육 확대로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대비 0.12%포인트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물가는 수요보다 공급 측면에서 많이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공공요금의 산정기준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효율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관리하되 인상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조정 시기를 분산하는 등 물가 불안요인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