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유재수 특파원] 버락 오바마 44대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가 본격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대선이 끝난 뒤 2기 행정부의 청사진 마련에 집중해왔던 오바마는 선거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어 강공 모드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공식 취임식 축하 파티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법정 한도치에 다다른 국가부채 한도 상향 조정이다. 지난해 말 벼랑끝 협상을 했던 '재정절벽'과 비슷한 양상의 줄다리가 예상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채무상향협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이민법, 총기규제, 복지개혁 등에서도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는 1기 행정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공화당은 채무 한도를 올리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미국경제를 도탄에 빠뜨릴 수 있다"며 강한 어조로 공화당을 압박했다.
이러한 위기감으로 인해 지난주 공화당은 아무런 조건없이 채무한도를 단기간 연장하자며 강경한 입장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경제 문제는 오바마가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4년 전 첫 임기 시작 때에 비하면 개선되기는 했지만, 경제지표도 여전히 암울하다. 7% 후반의 높은 실업률이 이어지고 있고, 공화당의 반대로 추가 경기부양은 어려운 데다가 유럽 재정위기 등의 외부적인 요인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
이민법, 총기규제, 복지개혁 등 내정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부문에서도 난제는 수북하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반면교사로 삼아 해외 군사개입을 극도로 자제하려는 오바마의 2기 외교·안보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프랑스의 말리 내전 개입, 알제리 외국인 인질사태 등 새로운 화약고로 떠오른 북아프리카와 이란 핵문제, 내전이 이어지는 시리아 사태 등도 오바마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고, 이슬람 극단주의 득세하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북한 문제도 뒤로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일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 총서기와의 잦은 만남 등을 통한 미·중 관계 개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개 국가 방안(two-state solution)'과 '아랍의 봄'의 지속 추진을 오바마가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할 외교분야의 장기적인 의제로 꼽기도 했다.
연일 미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하고 있는 총기사건을 해결해야하는 것도 오바마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지난 주 총기규제안을 마련하고 급한대로 대통령 행정조치로 총기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관련단체와 의회, 심지어는 민주당 내에서조차 반대가 만만치 않아 오바마의 고전이 예측된다.
입법권이 없는 대통령이 정책 입안자인 의회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지율이 필요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2009년 68%에 육박했던 것과는 달리 지난 주 갤럽 여론조사 결과는 48%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능력과 관계 없이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집권 2기의 저주(second-term curse)'라고 불리는 징크스다. 집권 2기의 저주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초선 때와 달리 각종 스캔들과 뜻밖의 어려움에 직면해 정치적 타격을 입는 것을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임자였던 조지 부시 前대통령은 재임 7개월 만에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고, 빌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까지 몰렸다. 로널드 레이건은 적대 국가로 명명한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고 콘트라반군을 지원한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타격을 입었고, 최악의 저주라 불리는 닉슨 前대통령은 1972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도청 지시,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19일 '오바마는 집권 2기의 저주(second-term curse)를 이겨낼 수 있을까?(Can Obama defy the second-term curse?)'란 제하의 기사에서 재임을 막 시작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고 △지루함을 극복해야하며, △스캔들을 주의하고 △너무 거창하게 목표를 잡지 말고, 그렇다고 소심하지도 말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