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일보 이형석 기자] 국민행복기금 출범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인 '채무 탕감'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대출금의 50~70%를 깎아주고 나머지 금액도 저금리로 상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소식에 '빚을 안 갚는 게 상책'이라는 심리가 퍼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계의 무거운 부채의 짐을 덜어주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진 국민행복기금이 오히려 모럴해저드를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은행의 집단대출 연체율은 2.0%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집단대출이란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앞두고 건설사에 줘야 하는 중도금과 이주비 등을 은행으로부터 단체로 빌리는 것으로, 1인당 평균 대출금은 1억5000만~2억원이다.
집단대출 잔액이 19조원인 농협은행의 경우, 연체율이 이달 중순 3.5% 가까이 치솟아, 2011년 말 1.4%에서 1년여 만에 2.5배나 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집단대출 잔액이 23조원으로 은행 가운데서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연체율도 같은 기간 2.2%에서 2.9%로 급등한 상태다.
농협·국민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을 합치면 42조원으로 은행권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 두 은행이 평균 연체율(1월 말 기준 2.0%) 상승을 이끈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이같은 집단대출 연체율의 급격한 상승이 집값 하락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기는 하지만 최근 새 정부의 지원대책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일선 창구에서 대출자들이 '돈을 안 갚고 버티다 보면 정부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며 배짱을 부리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도 "지금 대출금을 갚고 입주하면 정부의 (부동산 대책)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사례는 다른 대출자는 물론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 사이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3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지난 1월 말 123만9000명이며, 이 중 6개월 이상이 112만5000명으로 전체의 90.8%를 차지하고 있다.
또 신용회복위원회가 신용불량자의 채무 장기분할 상환을 유도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에는 114만명이 신청했는데, 이 중 30만명(26.3%)이 중도에 탈락했다.
이처럼 채무자들의 연체 기간이 길어지고 신용불량자의 상환 포기가 속출하는 배경에도 새 정부의 연체 채무자 구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채무자의 버티기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국가 경제에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구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