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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의 생계를 저당잡는 국민행복기금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20일은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지 16년이 되는 날이다. 16년 전 그날 이후 한국사회에서 넘쳐나는 것은 금융피해자였고, 점점 커져가는 것은 금융자본의 약탈이었다. 그 결과 우리사회 어디서나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1000조원의 가계부채와 320만 채무자란 현상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향후 그 숫자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100만명의 빈곤한 우리이웃들은 영원히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가계부채의 시작은 '주주 자본주의'로 운영되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있고, 그들의 '약탈적 대출'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를 끝장내는 방법 역시 같은 곳에서 나와야만 한다. 심각한 사회양극화 속에서 빈곤한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사의 대출이 아니라 복지의 확충이며,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규제하고 금융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금융자본의 편인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의 원인 진단도 채무자 구제방안도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다. 오히려, 정부의 금융정책에는 더 많은 금융피해자들을 양산할 위험성마저 지니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해소방안의 핵심으로 내놓은 '국민행복기금'은 은행 등 금융자본의 새로운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고, 채무자들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금융약탈임이 드러나고 있다.

사실상 국민행복기금은 금융사들의 부실채권을 정부가 회수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통상 시중보다 높은 가격으로, 일괄 매입함을 통해 금융사의 걱정거리를 일거에 해결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수 후 원 채권사가 이익을 배분받는 '사후정산' 방식을 통해 다시 한 번 금융사들의 이익을 챙겨주고 있다.

반면, 민중들에게는 실익 없는 쭉정이 대책에 불과하다. 국민행복기금은 학자금대출 연체자의 채무조정 및 취업 후 상환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관련 법률과의 충돌을 예상치 못한 부실 계획으로 당초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국민행복기금이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을 쥐어짜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행복기금의 상환자 연평균 소득은 484만원에 불과해, 이미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에 처한 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공공부조로 생계를 이어가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들의 최저생계비마저 채무 상환에 쓰도록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따라서 현행 국민행복기금은 대대적인 개혁방안을 찾을 때까지 즉각 운용을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반인권적인 불법채권추심 행위도 여전히 심각하다.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가 설치된 이후 금년 8월까지 접수된 불법사금융에 의한 불법채권추심 피해신고 건수는 총 699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횡행하는 불법채권추심은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의 한계에 기인한다. 현행법은 채권추심의 최근한도를 정하지 않아 회수율을 올려 수입을 늘리려는 추심업계의 불법추심을 부추기며, 채무자 대리인제도를 누락해 채무자의 방어권마저 부정하고 있다.

대부업계의 약탈적 대출 관행 역시 여전하다. 미등록 대부업체의 평균이자율은 연 52.7%로 대부업법의 상한선인 39%를 크게 웃돌고 있다. 합법 대부업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들 중 약 43개 업체가 법정이자율을 훨씬 상회하는 이자를 부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저신용자들은 은행권을 이용할 수 없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약탈적인 대부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공정채권추심법과 대부업법을 전면 개정하고, 공적정책금융을 확대하여 이와 같은 불법추심과 약탈적 대출을 신속히 근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