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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 러시아 추가 제재 예고
우선 자국이 60년간 유지해 왔던 영토를 빼앗기게 될 우크라이나는 강력히 반발하는 중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예비군 4만 명을 추가로 동원하고, 크림 반도에 주둔하는 자국 군대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군사력에 있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차이가 나고 있다. 또한 2006년에 이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가스 가격 협상이 잘 풀리지 않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끊어서 경제에 타격을 입은 전례가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17일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러시아 제재안을 결정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 유력 인사 13명과 크림 인사 8명에 대해 유럽연합 내 자산 동결 및 여행 금지 조치를 취했으며, 오는 20~21일로 예고된 정상 회의에서 러시아의 고위직 인사에 추가로 제한을 가할 수도 있다. 또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와 정치/경제 분야에서 각종 협정을 체결하여, 친서방 정권의 안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유럽연합 역시 러시아에서 가스와 식량 등 자원 공급에 있어 보복당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나아가 러시아의 기업인들도 현재 유럽에서 소비/투자하는 액수가 수십억 달러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서양 너머의 미국과 달리 근거리에 있는 러시아의 존재감은 한층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록 경제 규모로 보면 제재로 인해 입을 피해는 러시아가 더 크겠지만, 유럽인들이 받을 피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미국의 對 러시아 경고… 제재의 실효성에는 회의적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 러시아 인사 11명을 제재하는 안에 서명했으며, 백악관의 논평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되려는 크림을 지원하는 러시아에 대해 경고하였다. 하지만 이란 핵문제 협상이나 시리아 사태 해결에 있어서, 미국은 러시아의 협조 없이 일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제재가 형식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으며, 사태의 큰 고비는 넘겼다는 판단으로 17일 미국 다우 지수는 1% 넘게 상승하였다. 다만 앞으로의 불안정성과 미/러 대립이 여전히 남은 만큼 CNN 등 미국 언론들도 이 사태를 주시하는 중이다.
▶ 떨떠름한 중국, 미국과 발맞추는 일본, 피하려는 한국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은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위구르나 티베트 등 소수 민족들의 독립 운동을 우려하는 중국 정부는, 역시 우크라이나의 ‘소수 지역’인 크림의 독립을 드러내 지지하는 것을 꺼린다. 또한 자국의 성장률 폭이 낮아지는 시점에서, 국제적인 분쟁이 점화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크림의 독립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와 반대되는 길을 택해 러시아와 결국에는 공조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지난 15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크림의 독립 진행을 반대하는 안에 투표 국가 중 유일하게 ‘기권’을 표시한 것은 중국의 이러한 내적 갈등을 암시한다.
일본은 사태 초기에는 개입을 삼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미국-일본의 공조를 막기 위해 사전 작업을 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17일 주민투표가 마무리된 이후로, 일본은 서방 국가들과 비슷하게 러시아를 제재하겠다고 나섰다. 본래 일본은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반환 협상을 고려하여 크림 사태와 관련한 직접 충돌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8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은 크림의 독립 선언을 거부하고 러시아 정부 관계자의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안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근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 일정이 임박한 시기에,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시 곤란한 처지다. 지금까지 한국은 ‘자국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국제적인 갈등에 있어서는 대체로 미국의 입장을 따라간 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관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크림 사태에 대한 국가적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 관계자는 “검토 중” “공식 입장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한국은 지난 국제연합 안보리의 주민투표 무효화 안에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찬성’ 안을 냈지만, 그 이후의 개입을 꺼리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의 사태에는 강대국들은 물론 신흥/약소국들의 이해 관계까지 얽혀 있다. 일단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의 틈에 크림 반도에 손을 뻗치는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크림 지역 주민들이 지지함은 물론) 많은 자원과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에 섣불리 개입하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태와 연관된 정치적/경제적 상황 역시 현재 진행형인 만큼, 각국의 대응도 이에 따라 조정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