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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통화 절상률 주요 17개국 중 최고

(세종=연합뉴스) 이상원 박용주 기자 =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선진국의 환율 전쟁 속에서 한국의 통화 절상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통화 절상뿐만 아니라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 미국의 금리 조기 인상 가능성 등 대외 요건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경제·인문사회계 연구기관장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세계경제의 하방 위험이 남아 있고 미국 양적완화 축소로 신흥국 경제의 취약성과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하반기에 대외 위험 요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원화 환율 세자릿수 가능성 제기

11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9일 종가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16.2원으로 지난해 말 종가인 1,055.4원보다 3.7% 절상됐다.

이는 일본 엔화와 유로화 등 주요 17개국 통화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에 인도네시아 루피아의 달러 대비 절상률은 3.2%, 말레이시아 링깃은 2.5%, 엔은 2.4%, 필리핀과 터키 통화는 각 1.9%, 싱가포르 달러와 유로는 각 1.1%, 태국 바트는 1.0%, 쿠웨이트 달러는 0.1%였다.

홍콩 달러와 대만 달러, 영국 파운드와 캐나다 달러, 중국 위안, 뉴질랜드 달러, 호주 달러는 달러화 대비 약세를 기록했다.

중국 역시 위안화 약세 정책을 구사하면서 달러화와 유사한 흐름을 가져갔다.

선진국의 돈 풀기 전쟁 속에서 다른 신흥국보다 경제 기초체력이 좋은 한국으로 돈이 몰리면서 원화 가치가 급등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 지속, 외국인 자본의 국내 순유입 기조 등을 근거로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호평으로 선진국 자금이 유입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원화 값이 지나치게 가파르게 상승하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켜 국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준표 연구위원은 "원화 절상이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관광수지 적자 폭을 확대시켜 내수 경기에도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기름을 붓는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유럽에서 풀린 유동성이 신흥국으로 쏟아지면서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낀 한국으로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등 신흥국 경제 취약

원화 절상에 따른 수출 가격 경쟁력 약화에 이어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이전 전망보다 둔화할 가능성도 있어 수출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신흥국 경제의 부진을 이유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4%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0월보다 0.2%포인트 낮은 수치다.

특히, 중국의 경기 경착륙 가능성은 한국 수출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6.1%로 가장 크다.

현재 중국은 수출, 투자, 소비 등 모든 지표에 걸쳐 성장의 추진력이 지속적으로 약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올해 1분기 경제 성장률은 7.4%로 연간 목표치 7.5%에 미달했고 올해 연간 전체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에 부품, 소재 등 중간재를 공급하고 있어 중국의 경기가 둔화하면 수출에 타격을 받는다.

실제로 한국의 5월 대중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 감소했다. 월간 기준으로 대중 수출이 감소한 것은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이다.

중국 이외에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 다른 신흥국의 올해 성장률도 지난해나 이전 전망치보다 내려갈 것으로 KIEP는 예상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경기 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ECB가 최근 금리 인하와 마이너스 예금금리 도입 등 부양책을 발표한 게 이를 입증한다.


◇美 금리인상 등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 잠복

현재 세계 금융시장은 안정적이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라는 위험 요인이 잠복하고 있다.

현 부총리도 하반기에 대외 위험 요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지목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최근 상당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시사했으며 시장에서도 연준이 내년 중반 이후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회복에 속도가 붙으면 금리 인상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의 매튜 혼바흐 채권 전략 글로벌 대표는 "상대적으로 강한 미국 경제의 회복세를 감안하면 연준이 예상보다 빨리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신흥국으로 흘러갔던 달러 자금이 다시 미국으로 흡수되고 세계 금리는 동반 상승하게 된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금리가 상승하면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가계 부채 문제가 악화되고 부진한 소비는 더 침체된다.

신흥국 경제도 충격을 받게 된다. 1990년대에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중남미 국가들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격하게 유출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당국은 대외 여건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당국의 대책은 대외 위험 요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국제적 정책 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환율과 관련해 당국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