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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달러=900원대' 시대 임박

[재경일보 박인원 기자] 두 달 넘게 지속된 환율 하락세가 속절없이 이어지면서 '1달러=900원대, 100엔=900원대' 시대가 임박했다.

국내외 요인으로 볼 때 환율 세자릿수는 시점의 문제일뿐 연내 도래가 기정사실화한 분위기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11일 종가 기준으로 원화는 달러당 1,015.7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종가인 1,055.4원과 비교해서는 3.8% 절상(가치 상승)된 수치다. 이는 주요 17개국 통화 가운데 절상률이 가장 높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월 1,080원선에서 본격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20일 만에 1,030원대로 급격히 주저앉았다가 이후부터 비교적 완만한 하향 곡선을 보이고 있다.

원·엔 환율도 비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원·엔 재정환율은 지난 3일 100엔당 1,000원선이 깨진 이후 990원선까지 계속 위협하고 있다. 한때 1,500원 육박했던 것에서 30%나 절상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하반기 세자릿수 환율이 조만간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쓰비시도쿄UFJ는 연말에 달러당 환율이 975원, 웰스파고는 990원, 크레디트스위스는 975원을 각각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종전보다 50~70원 하향 조정한 것이다.

미국 경기회복과 양적완화 마무리에 따른 달러 강세 요인을 들어 세자릿수 환율 시대 도래시기를 내년으로 점치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1, 2분기 환율전망치를 각각 980원, 960원으로 잡고 있다.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세자릿수 환율 진입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원·달러 환율이 세자릿수였던 시기는 19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한 이래 2006년 1월∼2008년 4월간 약 27개월이다.

최근의 원화 강세 기조의 배경에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있다.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외환을 끊임없이 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707억3천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최근 한국이 새로운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받게 되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국내 증권시장과 채권시장에 지속적으로 들어온 것이 추가 요인이 됐다.

경상수지 흑자 누적으로 지난해에도 원화 강세 요인이 있었으나 미국 양적완화 축소 예고 등 각종 불확실성 이슈로 시장에 반영되지 않았다가 올해 들어 하락 압력이 본격화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지난주 유럽중앙은행(ECB)이 은행에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적용하기로 하는 금융완화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자금 추가 유입 기대감에 지난 9일 원·달러 환율은 1,020원선 아래로 떨어졌다.

문제는 경제여파다. 원·달러 환율 하락과 더불어 수출 경쟁국인 일본과 중국의 엔화, 위안화는 약세 기조를 보이면서 수출기업의 부담이 가중된 형국이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환율이 세자릿수로 떨어지면 경제에 큰 무리가 온다"며 "되도록이면 1달러=1천원을 마지노선으로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 등으로 손질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준표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 1,000원 붕괴는 수출경쟁력 약화와 관광수지 적자 확대로 내수 경기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100엔당 연평균 1천원을 기록할 경우 국내 총수출이 전년 대비 7.5%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환율 하락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책당국 입장에서는 지난해 경상수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무리한 시장개입에 부정적이다.

환율 하락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환율이 5% 하락하면 소비자에게 1조2천억원 내외의 비용경감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승호 연구위원은 "최근 원화 강세는 일부 업종에 영향이 클 수 있겠으나 여전히 감내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며 "한국경제가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수출 감소보다 성장 잠재력의 저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