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12일 원화 강세가 수출기업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내수시장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면서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금융당국의 개입은 환율의 방향성보다는 변동성, 즉 절상 속도 조절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모든 경제변수가 움직일 때는 양면성이 있다. 원화 강세에 엔화 약세까지 더해져 수출 쪽에 좋지 않은 뉴스라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 수출 드라이브에만 주력하다 보니 원화 저평가로 수출 대기업만 이득을 봤다. 내수를 중심으로 하는 중소기업은 손실을 봤고 가계도 희생해왔다.
수출에만 주력하면 세계 시장에 대해 취약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충격을 흡수해주는 역할을 내수가 해줘야 하는데 과거 내수시장이 워낙 열등하게 취급돼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내수도 중시돼야 한다.
최근 대기업·중소기업간 격차나 부의 양극화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데 원화 강세가 이런 문제를 일부 해소해주는 측면도 있다.
다만 방향성보다는 변동성이 더 큰 문제다. 대기업은 원화 절상의 속도가 너무 가파르지만 않다면 대응할 여력은 있다. 절상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변동성이 너무 커지지만 않도록 금융당국이 잘 대응하면 된다.
◇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구조적으로 수출 비중이 큰 우리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환율 하락이 내수에는 긍정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은데 그 효과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환율이 내린다고 가격을 내리는 사례가 많지 않을뿐더러, 가격이 내려 수입품 소비나 해외여행이 늘어나도 내수에서는 차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환율은 가급적 하락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나 현시점에서 '환율방어'를 시행할 명분이 별로 없다. 과거 2008년 고환율 정책 시행 당시 이익이 수출기업에만 돌아갔다. 투자 확대나 가계소득 증가, 내수회복 등으로 선순환되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 정부가 적극 나서기 곤란하다. 환율의 방향성을 둘러싼 정책보다는 환율 등락 속도를 조절하는 미세조정이나 기업의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
수출기업들은 원화 강세로 채산성이 악화돼도 가격을 조정하기 어렵다. 휴대전화와 반도체, 디스플레이는 세계 시장 차원에서 가격이 형성돼 있고, 석유화학이나 철강은 공급 과잉 국면이다. 소형 전자제품도 경쟁업체와의 경합 때문에 (조정이) 쉽지 않다. 다만 해외 생산을 많이 하는 휴대전화, 자동차 업체는 해외 생산 물량을 늘리면서 환율 불안에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경상흑자 규모와 달러 공급 등 기초여건 측면에서 원화 강세가 누그러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 위안화 약세의 영향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과 경합하는 품목의 경쟁력은 떨어지겠지만 국내 업체가 중국에서 가공해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비중도 커 나쁘지만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문제는 엔화인데 원·엔 환율의 안정을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이 필요하다.
◇ 선성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
경상수지 흑자 지속과 유럽중앙은행(ECB) 결정으로 글로벌 자금 유입이 더 늘고 있어 원화 절상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속도가 관건이다. 정부로서는 내수도 썩 좋지 않은데 원화 절상으로 수출 경기까지 안 좋아지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경상흑자도 수출 자체가 잘 됐다기보다는 내수 부진에 따른 불황형 흑자의 구조를 보인다. 따라서 외환당국이 경제주체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다.
환율 하락이 수출 기업에 부정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정도의 환율은 과거에도 경험했던 수준이다. 또 전체적으로 볼 때 환율 하락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수입 기업이나 소비자에겐 좋은 측면이 있다. 환율은 크게 국내총생산(GDP)이나 코스피와도 흐름을 같이한다. 보통 경제가 좋을 때 원화가 절상된다.
◇ 이경민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
계절적으로 6월에 수출이 잘 되고 여기에 ECB 결정도 작용해 외국인 자금 유입이 커질 전망이다. 이에 환율의 추가 하락 압력이 있다. 너무 급격히 하락할 경우 경제주체들의 대응능력이 약해질 수 있으므로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 당국의 대처가 필요하다.
수출을 통한 성장 견인은 이제 한계가 왔다. 내수시장을 통해 성장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환율 방향성은 균형환율로 회기하는 데 있다. 환율 하락을 내수, 수출 균형 측면에서 나쁜 것으로만 볼 수 없다. 외환당국이 환율의 방향성 자체를 조절하려 해서는 안 된다.
◇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한국이 경상흑자를 지속하는 등 다른 신흥국에 비해 기초여건이 견조한 편이어서 안전통화로서의 원화 위상이 올라간 상태다. 이 때문에 원화 강세 압박이 4분기 초까지는 계속되겠으나, 이후에는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환율이 1,000원선 밑으로 일시적으로 내려갈 수는 있지만 900원대에 머물기는 어렵다. 900원대로 내려가면 기업들의 수익성이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면 국내 경제 기초여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원화의 추가 강세가 주춤할 것이다.
또 미국에서 올 연말부터 내년 초 즈음 경기부양 및 초저금리에 대한 출구전략이 진행되면 달러화가 강세를 띠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국내 증시의 가격 메리트로 외국인 자금 유입이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절대금리 하락과 원화 강세로 채권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약해질 것이다.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적으며 인상 시기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엔화, 중국의 위안화가 약세인 중에 원화만 달러 대비 강세여서 환율이 수출에 부담이 되긴 한다. 그러나 수출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환율보다 세계적 수요다. 대외경기 개선에 힘입어 올해 하반기부터 수출의 본격적인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원화가 국제 결제통화가 아니고 국내 경제가 소규모 개방형 경제인 만큼 환율이 1,010원선까지 하락하는 데서 그칠 것이다. 정부의 환율 안정화 노력도 지속될 것이다. 올해 말에는 1,050원선으로 오를 수도 있다고 본다.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당국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은 국제사회에서 용인하지 않으므로 소규모로 개입해야 한다. 당국이 저지선으로 생각하던 달러당 1,020∼1,022원이 붕괴됐으니 또 다른 저지선을 만들어 차근차근 막아야 한다.
투기자금 유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도 필요하다. 자금 유출 동향을 주시하겠다는 당국의 말만으로도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환율은 결국 시장 수급에 따라 움직이므로 외환시장을 고려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원화 통화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은 막아야 한다. 최근 상황을 볼 때 금리 인하는 어렵지만 당분간 인상은 안 될 것으로 본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환율 변동에 대응할 여력이 작기 때문에 더욱 취약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