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하락, 러시아 루블화 폭락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지만 한국의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선방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유가가 급락하면서 촉발된 금융시장의 혼란이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에서 터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신흥국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한국은 주가와 환율 흐름이 안정적이고 국가부도위험지표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997년 국제금융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기초체질이 강해졌고 금융시장 변동에 면역력이 생겼다는 증거다. 그러나 소규모 개방 경제라는 한계를 가진 한국으로서는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국제금융시장 동향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은 물론 지지부진한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 경제의 체질을 더 강화해야 한다.
러시아의 금융위기는 국제 유가의 급격한 하락,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응한 서방의 경제제재 이외에 고유가 호황기에 석유산업 이외에 경쟁력 있는 산업을 키우지 못한 러시아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기 때문에 단기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4천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음에도 루블화 가치가 1998년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런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6.5%포인트에 달하는 파격적인 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하고 자본시장을 직접 통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지만 시장은 러시아의 한계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발 금융위기가 다른 국가들로 확산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은 물론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신흥국들도 금융시장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된 12월 중(11월28일대비 12월16일)아르헨티나 증권시장은 24.2%, 브라질은 14.1% 하락해 러시아 증시에 이어 2. 3위의 낙폭을 기록했다. 신흥시장 불안은 아시아로도 전염돼 태국 증시가 8.6%, 말레이시아 증시가 8.5% 하락했다. 이밖에 그리스는 12.3%, 포르투갈은 10.3%의 낙폭을 기록했다. 터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은 화폐 가치도 큰 폭으로 내렸다. 반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 하락률은 3.9%로 프랑스 6.6%, 영국 5.8%, 홍콩 5.6%, 호주 4.7%, 미국(다우존스) 4.3%, 독일 4.1%보다 낮았다. 외환시장에서도 신흥국 통화가치는 급락했지만, 원화는 같은 기간 1,107.9원에서 1,086.7원으로 1.9% 절상돼 차별화된 흐름을 보였다.
한국 금융시장이 강한 면역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하면 글로벌 투자자금이 신흥국에서 이탈해 달러화 표시 자산으로 더 빠르게 이동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는 제로(0) 수준인 현행 연 0∼0.2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내년 하반기 이후에야 금리 인상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1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매파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해석해 원ㆍ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보였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내부 회의를 열어 미국의 금리 동향과 러시아발 금융위기의 영향 등을 점검하고 필요시 관련 부처가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와 금융통화 당국은 확산 조짐을 보이는 국제금융시장 불안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때 기민하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 불똥이 튀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동시에 지속적이고, 철저한 구조개혁을 단행해 저유가로 조성된 우호적 여건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차원 더 강화된 기세로 전개될 아베노믹스로 초래될 엔저에 대한 면밀한 대비책을 세워 일본 경제의 공습에 한국 경제가 침몰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