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래픽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암) 인수가 결국 무산됐다.
이에 따라 기술 독점 등에 대한 업계의 우려는 사라지게 됐지만, 삼성전자처럼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키우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략을 다시 가다듬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8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ARM 인수를 포기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ARM의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도 매각 대신 ARM의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ARM은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 기업이다. 삼성전자[005930], 애플, 퀄컴 등이 개발·판매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 기술을 갖고 있다.
ARM이 이런 핵심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IP) 라이선스를 차별 없이 전 세계 기업에 공급하면서 현재 모바일 기기의 95%가 이 회사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의 경쟁 당국과 반도체 업계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혁신과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인수를 반대해왔다.
경쟁 기업들이 ARM의 모바일 반도체 설계 기술을 사용할 때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엔비디아가 갑자기 로열티를 크게 올린다거나 공급을 끊어버리는 등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거래 무산으로 이런 불확실성이 사라진 데 대해서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엔비디아와 ARM의 합병이 성사됐다면 칩 제조사인 엔비디아가 글로벌 AP 핵심 기술의 주도권을 쥐게 돼 경쟁사인 삼성전자나 애플, 구글의 우려가 매우 컸던 상황"이라며 "독과점 우려가 해소됐다는 점에서 업계에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반도체 관련 대규모 M&A 승인이 한층 까다로워지고, M&A 무산 사례가 잇따르면서 삼성전자가 예고한 대형 M&A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이달 초에는 독일 정부가 44억유로(약 6조원) 규모에 달하는 대만 글로벌웨이퍼스의 독일 반도체기업 실트로닉 인수를 막았다. 세계 실리콘 웨이퍼 시장 3, 4위 업체 간의 M&A로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독일 정부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중국계 사모펀드가 국내 중견 시스템 반도체 기업 인수를 추진했으나 미중 갈등 끝에 무산되기도 했다.
현재 삼성전자도 내부적으로 대규모 M&A를 추진 중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은 지난달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2'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모바일, 가전 등 전 사업 부문의 M&A 가능성을 언급하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메모리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의미 있는 M&A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