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한국, 美세탁기 세이프가드 WTO 분쟁 승소

우리 정부가 미국이 시행한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의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합치 여부를 다툰 분쟁에서 승소했다.

미국이 판정에 불복해 상소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세이프가드 남용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미 상당한 물량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고 있어 판정 결과에 따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WTO는 전날(현지시간) 회람한 패널 보고서에서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가 WTO 협정에 불합치한다고 판정하고 이 사건을 제소한 우리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미 정부는 수입산 세탁기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자국 업계의 주장을 수용해 2018년 2월부터 세탁기 세이프가드를 시행 중이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겨냥한 조치다.

3년간 시행 후 한차례 연장됐으며 5년 차인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세탁기 완제품의 경우 쿼터 120만대에 관세 14∼30%, 부품은 쿼터 13만개에 관세 0∼30%가 적용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세이프가드가 WTO 협정에 불합치한다고 보고 2018년 5월 WTO에 제소했다.

이번 패널 판정에서 우리 정부는 세이프가드 조치의 본질과 관련된 핵심 쟁점 5개 모두에서 위법 판정을 얻어냈다.

5개 쟁점은 ▲ 수입 증가 및 산업 피해가 예견치 못한 전개 및 WTO 의무로 인한 것인지 ▲ 산업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급격한 수입 증가가 있었는지 ▲ 국내 산업의 범위가 적절히 설정됐는지 ▲ 심각한 피해의 존재가 적절히 입증됐는지 ▲ 인과 관계의 존재가 적절히 입증됐는지다.

WTO 패널은 미국이 주장한 수입 증가 및 산업 피해 원인이 WTO 협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수입 물량 증가 분석이 논리적·적정성 측면에서 미흡하다고 판정했다.

또한 미국이 설정한 국내 산업 범위와 심각한 피해의 존재 입증이 부적절하며, 수입산 세탁기의 가격 효과 분석과 수입 물량과 산업 피해 간의 상관관계 분석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이번 판정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면 분쟁이 종료되고 세이프가드도 해제될 수 있다. 다만 분쟁해결 절차를 완료하기까지 1년가량이 걸리므로 내년 2월까지 세이프가드는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전자제품 판매장 [독자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로스앤젤레스 인근 전자제품 판매장 [독자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대로 상소할 경우에는 분쟁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 이 경우 현재 WTO 상소기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 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예단하긴 어렵지만 여러 여건상 미국이 상소할 공산이 크다"면서 "다만 우리 기업들이 세이프가드에 대응해 이미 미국 내 현지 투자와 생산 물량을 늘린 상황이어서 세이프가드 종료 여부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국가적으로는 WTO 회원국으로서 한국의 권리와 위상이 제고되고, 미국이 추후 세이프가드를 연장하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정 결과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윤창현 산업부 통상법무정책관은 "이번 패널 판정을 계기로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가 조기에 종료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우리 업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WTO 분쟁해결절차를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 미·중 경쟁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의 수입규제 조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철저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