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으로 탄소중립 정책이 전 세계적 의제로 떠오른 가운데 탄소중립 정책이 오히려 화석연료 소비량을 끌어올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원자재 가격 급등과 물가 상승 등을 야기하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유럽과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제권이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면서 석탄이나 석유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주요국이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설치한 풍력과 태양광 등이 이상 기후로 제 기능을 못하면서 에너지 대란이 빚어지자 부족한 전력을 메꾸기 위해 화석연료 소비가 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석탄 발전량은 9%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약 20% 급증했고, 주요 탄소 배출국인 인도와 중국에서도 각각 12%, 9%가량 늘면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IEA는 "세계적으로 석탄 화력발전이 많이 늘면서 각국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없다면 올해 세계 석탄 수요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파산 위기 몰렸던 화석연료 기업들, 에너지 대란에 실적 개선
2020년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상당수 화석연료 기업이 적자를 기록했으나 에너지 대란으로 석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들 기업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민간 석탄업체인 피바디 에너지는 지난해 4분기에 5억1300만 달러(약 610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약 20년 만의 최대 분기 순익이다. 이 회사는 전년 동기에는 1억29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짐 그레치 피바디 최고경영자(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철강생산용 연료탄과 발전용 연료탄의 가격이 모두 강세를 보이면서 수익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미국 2위 석탄업체인 아치 리소시스도 지난해 4분기 2억2700만 달러의 순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제 석탄 시세의 기준이 되는 호주 뉴캐슬의 발전용 연료탄 가격은 최근 1년 사이 190% 급등했다.
BHP와 글렌코어 등 다국적 광산업체들도 석탄, 니켈, 알루미늄 등 주요 광물 가격의 강세에 힘입어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고, 엑손모빌과 셰브런, BP, 셸 등 석유 메이저들도 크게 개선된 지난해 실적을 최근 발표했다.
▲탄소중립으로 원자잿값 상승세 장기화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이 수요와 가격을 밀어 올린 것은 화석연료뿐만이 아니다.
친환경 에너지 수요가 늘면서 풍력과 태양광, 전기차용 배터리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철광석, 구리, 니켈, 리튬, 코발트 등의 가격이 급등했다.
친환경 전환정책이 원자재 가격과 물가 상승을 야기하는 이른바 '그린플레이션'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경제권을 강타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국의 친환경 전환 정책은 되돌릴 수 없는 대명제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상승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많은 원자재 업체들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규 투자를 꺼리고 있는 것도 수급 불균형에 의한 가격 상승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석유와 석탄 부문은 세계적인 탈탄소 정책 탓에 신규 투자를 안 하고 있고, 다른 원자재 업체들도 지난번 슈퍼 사이클 때의 교훈으로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