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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부품업계 "러 수출길 막히고 루블화 폭락에 피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현지에 부품을 수출하는 중소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자동차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 여파로 러시아행(行) 수출 부품의 환적 통로가 막히면서 현재 국내 부품업체들은 현대차 러시아 공장에 공급해야 할 부품을 선적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이달 생산 계획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현지에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등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세종공업, NVH코리아, 경신, 대원산업, 동아화성, 유라코퍼레이션 등 15곳가량의 부품 협력사들이 진출해 있다.

이들은 대부분 2011년 현대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건립할 당시 함께 현지에 진출해 공장 인근에서 차체 및 전장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로, 대다수가 한국에서 들여온 부품을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현대차에 납품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인천 중고차 수출단지
[연합뉴스 제공]

협력업체들은 현대차 러시아 공장 가동에 본격적으로 차질이 발생하는 시점을 5월로 예상하고 있다. 다음 달 중순까지는 그간 확보해둔 부품 재고를 활용해 공장을 가동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원활한 가동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 부품업체의 국내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로 부품을 수출하려면 직항 노선이 없어 독일 함부르크 등에서 환적을 해야 하는데 벌써 환적이 막히고 있어 수출이 어렵다"며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해 부품을 수출하는 방법도 있지만 컨테이너 분실 우려 때문에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지 진출 부품업체 관계자 역시 "현재 대(對)러시아 수출용 부품 선적이 모두 취소되고 있다"며 "반도체 등 유럽에서 들어오는 부품의 수급이 중단되면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절반으로 줄인 생산 계획도 이행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협력업체들은 아직까지는 매출 하락 등의 직접적 피해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된데다 루블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한숨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러시아 시장에 매출액의 20%가량을 의존하고 있는 국내 한 부품업체의 직원은 "현대차·기아가 45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그러면 협력사들은 최소한 수백억원의 손실을 본다는 의미"라며 "이미 직원 급여와 부품 결제 대금 지급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고 전했다.

대러 의존도가 높은 또 다른 부품업체의 직원도 "납품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받고 있기 때문에 루블화 약세가 지속되면 피해가 막대해진다"며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생산이 멈추는 것은 특근을 통해 만회할 수 있지만 환차손으로 인한 피해는 만회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협력업체들은 최악의 경우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손절' 흐름에 따라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는 시나리오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최근 미국 포드는 러시아 내 합작회사의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고 제너럴모터스(GM)와 볼보, 도요타, 마쓰다 등은 자동차 수출 중단을 선언하면서 러시아와의 '선 긋기'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러시아 수출·금융 제재로 피해를 보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긴급 수출안정자금과 산업안정기금 등을 통한 유동성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대금 결제가 2∼3달만 밀려도 도산 가능성이 높아지는 1·2차 협력업체들의 특성상 연쇄 부도의 우려가 있는 만큼 대출 제한을 한시적으로 풀어주는 등 유동성 지원을 통해 애로 사항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