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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잿값 급등에 산업계 비상…소비자까지 나비효과

국제유가와 주요 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를 타면서 산업계의 고충이 깊어지고 있다.

원료비 상승으로 인해 철강재, 시멘트 등 제조업 현장에서 필수로 쓰이는 제품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물류난까지 겹쳐 산업 전반에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생산비용 증가를 온전히 흡수하기 어려워진 일부 업종은 이를 소비자 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소비자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비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고유가 압력에…석탄·철광석·비철금속 등 원자잿값도 고공행진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01달러(1%) 하락한 배럴당 99.2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때 배럴당 130달러대까지 치솟은 국제유가는 지난주 하락세로 전환되며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연초 가격(76.08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내 수입 비중이 큰 두바이유도 지난 1일 기준 배럴당 101.61달러를 기록해 연초(76.88달러)보다 32% 이상 올랐다.

국제유가가 이미 정점을 통과했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전시 상황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원자재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쇳물을 생산할 때 연료로 사용되는 제철용 원료탄(호주산) 가격은 전날 기준 t(톤)당 471.5달러로 연초 대비 31.13% 상승했다.

철광석 가격(중국 칭다오항)은 지난 2일 기준 t당 159.85달러로 연초 대비 30.07% 높다.

철근의 원재료인 철스크랩(고철) 가격은 지난달 21일 기준 t당 70만원으로 최근 1년여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플라스틱과 섬유 등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 가격은 지난 2일 기준 t당 888.5달러로 연초 대비 19.48% 올랐다.

에틸렌 가격 역시 지난 2일 기준 t당 1360달러로 연초 대비 43.16% 상승했다. 이는 최근 1년여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철금속 가격은 지난 2일 기준으로 t당 알루미늄 3483달러, 니켈 3만2800달러, 아연 4332달러, 납 2447달러를 나타냈다. 연초와 비교해 각각 23.71%, 58.22%, 20.27%, 5.16% 올랐다.

제철용 원료탄과 철광석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철강사들은 제품 가격을 연쇄적으로 올리고 있다.

포스코는 올해 들어 철강 유통업체에 판매하는 후판 가격을 두 차례에 걸쳐 6만원 올렸다.

열연 유통 가격도 지난달 t당 5만원을 올린 데 이어 이달부터 10만원을 추가로 인상했다.

현대제철 역시 지난달 열연·냉연 유통 가격을 t당 5만원, 후판 가격은 t당 3∼5만원 인상했다. 이달 들어서도 열연·냉연 가격을 t당 10만원 올렸다.

철근 가격도 2월에 t당 2만9천원, 3월에 3만1천원, 4월에 2만6천원을 각각 인상했다.

특히 현대제철은 2분기부터 철근 가격에 전기요금 인상분을 반영하는 새로운 가격 체계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이달 인상분에는 고철 가격 인상분 2만2천원 외에 전기요금 인상분 4천원이 새로 포함됐다.

현대제철은 국내 최대 전기로 업체로, 전기요금 인상은 생산비용 증가로 그대로 이어진다. 전기요금은 유가 등 연료비 상승으로 인해 이달부터 상향된 기준연료비가 적용됐다.

철강업계는 완성차업체와 조선사 등 대규모 수요처와의 별도 제품가격 협상에서도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수요산업 역시 원가 부담이 워낙 커진 상황이라 협상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휘발유 [무료이미지]

▲원가 부담 커지자 가전·車 등 소비재 가격 줄줄이 올라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 급등은 TV,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 소비자 제품 가격으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각사의 2021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평균 TV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32% 상승했다.

지난해 LG전자의 평균 TV 판매가격 역시 전년보다 26.4% 상승했고, 냉장고·세탁기 판매가격도 7.2% 올랐다.

지난해 TV 판매 가격이 급등한 것은 프리미엄 제품 확대 영향도 일부 있지만, 주요 원재료인 TV·모니터용 디스플레이 패널이 전년 대비 40% 안팎으로 크게 상승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 생활가전 제품들도 주요 원자재인 철판과 플라스틱, 구리 가격이 전년 대비 15.1∼21.9%가량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커져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해상 물류를 주로 이용하는 대형 전자제품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속 중인 글로벌 물류난이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 65인치 TV의 국제 운송비는 9달러(약 1만원) 안팎이었으나, 작년에는 50달러(약 6만원)에서 많게는 100달러(약 12만원)까지 상승했다.

업계에선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물류 차질 장기화 영향으로 올해도 전자제품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국제유가는 결국 제품가격으로 어떻게든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올해도 가격 상승 압력이 높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동차업계는 강판 등 원자잿값 상승이 곧바로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카플레이션'(car+inflation) 현상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완성차 업체들은 일반적으로 부품 구매 계획을 6개월∼1년 단위로 짠 뒤 부품을 미리 적정 가격에 구매해둔다. 따라서 원가 상승을 바로 판매 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대신 연식 변경이나 신차를 출시할 때 가격을 올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까지 겹치면서 지난해부터 이미 원자재 가격 상승이 신차 가격 책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의 승용차 평균 가격은 4759만원으로 작년(4182만원)보다 13.8% 올랐고, 레저용 차량(RV)의 평균 가격은 4238만원으로 작년(4177만원)보다 1.5% 상승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반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자동차 가격은 이미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물가와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차량 가격까지 오르면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될 수 있어 업계도 고민이 깊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 [무료이미지]

▲건설현장은 자재난 '비상'…조선·항공업도 영향권

건설업계는 시멘트, 레미콘을 비롯해 철근, 골재 가격 등 전방위 가격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시멘트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유연탄 가격이 급등한 데다 공급 차질까지 빚어지면서 생산이 줄었다.

여기에다 봄철 성수기를 맞아 건설현장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달리면서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시멘트사들은 이미 지난 2월 레미콘 등 고객사에 유연탄과 요소수 등 원자재 가격 인상을 감안해 시멘트 가격을 18%가량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시멘트 가격 인상은 레미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레미콘 생산에 필요한 골재도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뛰고 있다.

철근콘크리트연합회도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위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사 대금 20% 인상을 요구하며 최근 한차례 파업을 한 데 이어 2차 파업도 예고하는 등 건자재 가격의 도미노 인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자잿값이 계속 오르면 건설 단가가 높아지고,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철광석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선박의 강재로 쓰이는 조선용 후판 가격이 선박 원가의 20% 가까이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사와 철강사의 가격 협상이 매년 정해진 기간에 진행되기에 철광석 가격 인상에 따른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또한 지난해 조선사들은 철광석 가격 급등에 따라 예상되는 손실을 실적에 공사손실충당금으로 미리 반영해둔 상황이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철강사들과의 협상에서 최소 가격을 동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는 당장 고유가로 연료비 지출이 늘어 고정비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연료비 부담이 확대됨에 따라 항공권 가격도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이달 국제선에 부과되는 유류 할증료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항공사가 항공권 가격에 유가 인상분을 바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선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항공권 가격을 올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수익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위기 속 여객 대신 호실적을 낸 화물도 수익이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